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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저, 꼭 사랑해야 하나요?
  • 민수빈 기자
  • 승인 2019.03.04 00:56
  • 호수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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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이었을까.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나 헤어졌어”라며 운을 뗐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래도 넌 모쏠은 아니잖아.”

이 대화의 전제는 그날의 내게 사뭇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모든 이가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본 사람은 열등하다’는 사실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애를 마치 하나의 ‘스펙’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도 새삼 씁쓸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연애를 숙제로 여기며 자책하고, 색안경을 낀 채 연애경험이 없는 사람을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여기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언젠가 기사에서 ‘우리 사회는 연애하지 않는 20대, 결혼하지 않는 30대, 아이 없는 부부들을 포용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시대에, 어쩌면 가장 자유로워야 할 ‘사랑’은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모름지기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이라면 연애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당위에 균열을 낸 관념이 있다. 바로 ‘비연애’다. 비연애의 핵심은 간단하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과정은 어디까지나 한 인격체가 온전히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극히 정상적이고, 지극히 올바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움직임을 하나의 큰 결의 혹은 급진으로 바라보거나, 심지어는 ‘연애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의 자기 위안’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지금에야 그간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강요됐던 사회의 기류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사실 나 또한 ‘누구나 부러워할 멋진 사람과의 연애’를 스무 살의 목표로 삼은 사람 중 하나였다. 남부럽지 않은 연애를 시작하고 싶었고,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묘한 우월감을 맛보고 싶었다.

욕심이 앞섰던 탓일까. 호기롭게 시작했던 대학생으로서의 첫 연애는 생각보다 빨리, 싱겁게 막을 내렸다.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듯 결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경험으로 나는 한동안 연애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왜 이 허무한 경험을 위해 그토록 안간힘을 썼는가’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혼자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관계에 욕심을 갖기 전에 스스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부터 제대로 알아갔다. 그렇게 차근차근 스스로에게 집중하다 보니 홀로 맛보는 사소한 즐거움이 얼마나 뜻깊은지 깨달았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의 어색한 식사보다 홀로 여유 넘치는 소박한 한 끼를 챙겨먹는 것이 좋아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해 오래 고민하는 쇼핑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혼자라는 것이 결코 초라하고 허전한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이 거창한 서사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자’는 내용으로 막을 내린다. 연애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것도, 연애가 어려운 것도, 결코 불행이나 결점이 아니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마음의 박자가 맞는 사람과 행복해지기를 선택하는 것. 연애는 이 이상 이 이하도 아니다.

오늘 어디에선가 ‘왜 나는 연애를 못 하지’란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가 있다면 부디 그 굴레를 내려놓길 바란다. 당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당신, 꼭 사랑할 필요 없다.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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