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소란’을 만나다

‘하루 종일 너를 공부해’, ‘내 눈엔 지금 너무 완벽하니 살 빼지 마요’란 달콤한 말들로 마음을 간지럽힌다. 잔잔한 멜로디로 담백함까지 갖췄다. 노래를 통해 건네는 위로로 꾸준히 사랑받는 밴드 ‘소란’의 고영배(리더·보컬), 서면호(베이스), 이태욱(기타), 편유일(드럼)씨를 만났다. 

▲왼쪽부터 이태욱, 고영배, 서면호, 편유일

Q. 소란이라는 팀명은 무슨 뜻인가. 

A. (영배) ‘소란스럽다’ 할 때 소란이다. 사람들이 반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시끄러운 음악을 할 것 같은데 막상 들어보면 잔잔한 음악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웃음).

 

Q. 소란의 결성에 있어 고영배씨가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A. (영배) 내가 한 명씩 직접 설득한 것이 맞다. 면호는 밴드를 구성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다. 유일이는 군인이었는데 전역 직전에 섭외했다. 태욱이는 2010년에 합류했으니 소란의 정식 멤버가 되기까지 가장 오래 걸렸다. 원래는 밴드가 자리 잡을 때까지만 도와주려 했었다. 이렇게 수소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클래식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서는 밴드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없었다. 

 

Q. 네 명이 모인 다음엔 어떻게 활동했나.

A. (영배) 홍대에 있는 클럽에서 공연했다. 클럽 공연을 하려면 30분 정도의 레퍼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내내 다른 가수 노래 커버만 하면 무대에 잘 안 세워준다. 그래서 자작곡을 쓰게 된 것 같다.
(면호) 당시에 영배가 데모를 만들어 둔 곡이 몇 개 있었다.
(영배) 맞다. 그 곡들로 평일에 클럽 사장님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주말에 공연했다. 그 때 불렀던 「가을 목이」와 「잊어야 해」도 음원으로 나왔다. 

 

Q. 거의 매달 공연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소란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있다면.

A. (유일) 영배 형이 무대 맨 앞에서 춤을 춘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영배 형이 입담 좋기로 유명한데, 입으로는 한계가 왔구나 싶기도 했다(웃음). 초반엔 형이 춤추는 게 웃기고 어설펐다. 그래도 타고난 리듬감이 있는지 지금은 댄서들보다 더 멋있게 춘다. 대단하다. 
(면호) 또 공연마다 어떤 가수분들도 따라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를 들어 ‘퍼펙트데이’ 공연에는 ‘관객 딜리버리 서비스’가 있다. 관객 한 분을 뽑아 공연 당일 멤버가 직접 집에 모셔다드리는 것이다. 이밖에도 공연마다 이색적인 프로그램들이 많다.

 

Q. 그렇다면 매번 공연의 내용이 색다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것만은 꼭 한다는 의식이나 징크스가 있나. 

A. (영배) 일단 유일이는 손을 엄청나게 씻는다. 장기 공연이면 아예 핸드워시를 공연장에 사다 놓는다(웃음).
(유일) 손을 깨끗이 하는 게 드럼 스틱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아, 영배 형은 안경을 이것저것 써본다.
(영배) 그리고 안경을 항상 닦는다. 옛날에 방송인 박경림 누나가 무대 전에 떨고 있는 나를 보고 갑자기 “영배야, 떨지 말고 안경 닦아.”라고 말해주셨다. 그래서 안경을 봤더니 진짜 너무 더러운 거다. 그 이후로 안경을 닦는 게 버릇이다. 늘 안경 닦는 수건을 갖고 다닌다.

 

Q. 어느덧 활동 10년 차다. 그간 의견이 부딪칠 때도 적잖았을 것 같은데,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A. (영배) 자신의 스타일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이 점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모두 인정한다. 사실 내가 고집이 센데 고맙게도 멤버들은 내 의견을 존중해준다. 나도 멤버들의 강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게 우리가 오래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인디밴드 중에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지 않았나.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힘든 시간도 있었을 것 같다. 

A. (영배) 결성 초기에는 힘들었다. 레이블 계약 직전 미니앨범 1장, 싱글 1장을 내고 나서 단독공연을 준비할 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힘들었다. 그 때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유일) 이것만으론 생활이 안 되니까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영배 형한테 진지하게 얘기한 적이 있다.
(영배) 면호는 다른 밴드에서 섭외 요청도 많이 와서 보내줘야 하나 고민했다. 애초에 밴드를 하기로 마음먹은 게 아니었던 태욱이에겐 더 미안했다. 그렇게 힘들게 단독공연 준비할 때쯤 몇몇 레이블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에겐 생명수 같았다.
(유일) 나도 그 무렵에 갑자기 드럼 레슨생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면서 배우겠다고 하더라. ‘이렇게 계속 음악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Q. 그간 많은 목표를 이뤄왔을 것 같다. 그래도 향후 소란의 목표가 있다면.

A. (영배)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단독 인터뷰 등 처음 시작하던 때 허풍처럼 말하던 것들이 지금은 다 이뤄졌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면서 밴드 음악을 오래오래 하는 게 새로운 목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가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 않나. 그걸 이뤄내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팬분들이나 『The Y』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A. (태욱) 소란을 알아주시고 음악을 들어주시는 팬분들께 항상 감사하다. 이 기사로 소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노래를 듣자마자 좋아해 주실 거라 믿는다.
(면호) 물론 음원도 좋지만, 공연의 느낌과 사운드가 더 좋다. 소란을 모르시는 분들은 일단 콘서트에 놀러와 달라. 당신을 ‘입덕’시켜드리겠다(웃음).
(영배) 저희 노래 「to.」에 ‘항상 옆에 있을게. 너의 얘길 들을게’라는 가사가 있다. 그 가사처럼 항상 옆에서 노래를 들려주는 가수가 되겠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유일) 밴드로서의 어필은 앞에서 다 했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독자 여러분들 올 한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작년 12월 발매된 앨범 『Share』의 타이틀곡 「행복」 들으시면서 2019년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란다.

글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사진 박수민 기자
raviews8@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