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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만들었지만 막 만들지 않은, 시원하지만 따뜻한『리틀 포레스트』 속 막걸리 이야기
  • 김나영, 하광민 기자
  • 승인 2018.12.03 06:54
  • 호수 46
  • 댓글 0

소나기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 있었다. 비가 내리니 막걸리에 파전을 안 먹고 배길 수 없었다. 그렇게 같이 수업을 끝낸 친구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술자리. 그때의 기억은 든든하고 따뜻한,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단순히 배가 부르고 취기가 올라서였을까. 아니, 좋은 사람과 쌀쌀한 날에 마시는 막걸리는 마음속까지 따스함으로 꽉 채우는 무언가가 있다.

“최고의 안주는 알싸한 추위와 같이 나눠 마실 사람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과 친구들이 막걸리를 담가 먹는 장면에 나온 대사다. 주인공 혜원은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도시에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오랜 친구인 재하,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밥을 해먹으며 포근한 자연 속에서 사계절을 보낸다.

“식혜의 엿기름은 단맛을 내지만 막걸리의 누룩은 어른의 맛을 낸다”


막걸리의 ‘막’은 ‘마구’의 줄임말로 ‘특정한 규칙 없이 대충’, 혹은 ‘지금 바로’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지금 바로 걸러 마시는 술’이다. 막걸리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누룩, 쌀, 물을 1 : 5 : 7.5의 비율로 준비한다. 쌀을 여러 차례 씻어 물에 8시간 이상 불린다. 다 불린 쌀은 찜솥에서 40~60분간 찌고 뜸을 들여 고두밥*을 만든다. 고두밥은 3시간 정도 식혀 살균된 용기에 누룩과 골고루 섞어 넣는다. 이후에는 용기의 입구를 천으로 덮고 15~22도가 유지되는 실온에서 발효시킨다. 처음 2~3일 동안은 하루에 두 번 가량 젓고 거품이 줄면 술맛을 본다. 이때 맛본 술이 본인의 입맛에 맞는다면 거른다. 이렇게 거른 원주의 도수는 보통 15도다. 원하는 농도에 따라 물의 양을 조절해나가면 막걸리가 완성된다.

“요리도 인생도 타이밍이 필요해”


혜원의 엄마가 혜원에게 한 말이다. 막걸리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막걸리는 발효가 과해도, 부족해도 안 된다. 이를 위해 주의해야할 점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용기의 입구를 밀봉해서도, 너무 열어둬도 안 된다. 입구를 밀봉하면 막걸리가 발효되면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용기가 터질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입구를 개방해두면 산소와의 접촉이 필요 이상으로 발생해 발효가 과해진다. 재료별 비율을 맞추는 것과 시간을 지키는 것 또한 적절한 발효를 위한 필수 요소다. 물이 과하게 들어가거나 거를 시기가 지나버린 막걸리는 발효가 많이 돼 산미가 강하다. 같은 원리로, 빚어 놓은 술에 물을 희석하면 알코올 도수가 낮아져 다른 잡균들의 증식이 일어나 신맛이 난다. 또 누룩이 많아지면 쓴맛이 날 수 있다. 따라서 막걸리를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선 ‘타이밍’이 중요하다.

시판 막걸리보다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이 짧은 이유는 생막걸리엔 효모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시판 막걸리는 저온 살균을 거치면서 효모가 죽어 더 이상 숙성이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생막걸리에선 효모가 계속해서 발효를 일으킨다. 생막걸리는 보통 4일 정도의 발효 과정을 거치는데, 발효가 덜 끝난 상태에서 술을 걸러 병에 넣으면 탄산이 생겨난다. 그렇게 완성된 막걸리는 톡 쏘는 느낌이 아닌 잔잔한 청량감을 준다.

신촌의 ‘술익는 마을’을 방문해 생막걸리를 마셔봤다. 이곳의 생막걸리는 시판 막걸리보다 덜 달고 조금 더 텁텁했다. 물론 그 정도가 과하지 않아 마시는데 무리는 없었다. 또 생막걸리가 더 청량하고 뒷맛이 깔끔한 것 같았다.

이후 기자는 시판 막걸리와 생막걸리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고 싶어 누룩을 주문해 집에서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봤다. 3일간 발효시키니 시큼함이 강했다. 아무래도 타이밍을 맞추는 데 실패한 듯하다. 찾아보니 생막걸리는 원래 시판 막걸리보단 시큼한 맛이 있다고 한다. 신 맛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시니 신맛 뒤에 가려진 다양한 맛들을 음미할 수 있었다. 직접 만든 막걸리에선 부드러운 탄산이 느껴져 청량함이 강했다. 강하지 않은 단맛이 혀를 즐겁게 했고 목넘김도 깔끔했다.

시판 막걸리보다 값이 싸지도, 제조 과정이 간단하지도 않지만 생막걸리를 굳이 만들어 마시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더 맛있다. 더 맛있게 느껴졌던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술은 더 소중하고, 또 소중해서 더 음미하게 된다. 또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나눠 마시게 된다. 그럼 뭔들 맛이 없겠나. 『리틀 포레스트』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다양한 음식들이 더욱 맛깔나고 탐스러워 보이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혜원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관객과 공유하고, 그 음식을 소중한 친구들과 나눠먹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

나흘 간 이리저리 신경 쓰면서 만들었던 막걸리는 엄격하게 보면 실패작이었다. 시큼한 맛은 사라지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집에서 달그락거리며 밥을 짓고 술을 담그며 매일 서너 번씩 술독을 확인하던 딸내미의 실패가 가여웠나보다. 부모님이 한 번 맛이나 보자며 막걸리를 꺼내셨다. 사이다와 섞어 마시면 신 맛이 덜하다면서 사이다도 꺼내셨다. 2리터 남짓한 막걸리는 그날 동났다. 역시나 최고의 안주는 알싸한 추위와 같이 나눠 마실 사람이다.

*고두밥 : 아주 되게 지어 고들고들하게 지은 된밥을 말하며, 주로 식혜나 술을 만들 때 발효에 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많이 사용한다.

글 김나영 기자
steaming_0@yonsei.ac.kr

사진 하광민 기자
pangman@yonsei.ac.kr

김나영, 하광민 기자  steaming_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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