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소문 다 났어. 정신병 걸려서 약 먹는다며?”
 

내가 ‘틱장애*’를 앓기 시작한 건 13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남과 다른 행동을 하는 나의 모습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때로는 틱을 멈추려고 팔을 세게 꼬집었다. 살집을 쥐어뜯을 때마다 피멍이 들고 아팠지만, 틱이 멈추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비하면 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독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나였기에, 또 평범한 친구들 사이에 평범하게 스며들고 싶었기에. 이 유별난 행동을 멈추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틱이 발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증상이 점차 나아지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왜 눈을 깜빡이냐고 묻는 아이들도 점차 모습을 감췄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소문이 전교에 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게 소문이 날 정도의 일인가? 나 말고도 약을 먹는 친구들은 많을 텐데. 그러고 보니 나는 여태까지 왜 눈 깜빡임을 멈추기 위해 왜 이렇게 날 학대했을까? 기침이나 눈을 깜빡이는 거나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건 똑같은데. 혹시 내 모습이 창피한 걸까?

 

“정신병자 xx 아니야. 야 이 xx야, 왜 그렇게 일을 해?”
 

몇 달 전 대웅제약 윤재승 회장이 직원에게 한 말이다. 그의 폭언은 삽시간에 대한민국 전역에 퍼져 큰 파장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그의 갑질에 분개했다.

그런데 이 발언이 유독 내 가슴 한구석을 쑤셨던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무의식중에 ‘정신병자’라는 단어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했다. 정신병자’는 원래 ‘정신질환’에 놈 ‘자(子)’를 합성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뜻하는 중립적인 단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며 자연스레 폄훼하는 의미가 더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자’에게 이 수식어를 거리낌 없이 붙인다. 

한편 윤 회장은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은연중에 정신질환자가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편견을 드러냈다. 그의 말에는 “네가 정신병자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일을 해?”라는 뜻이 담겨있다. 성균관대 정신의학과 홍진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 응답자의 56.1%가 직장 내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정신질환자를 향한 사회문화적 인식은 그들의 턱밑에 뾰족한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실제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환자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정신질환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건강 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 경험이 있는 대상자의 비율은 7%에 불과했다. 이는 같은 조사에서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장애를 앓은 적이 있는 대상자가 25.4%인 것으로 드러난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대한민국에서는 정신과 진료를 받으려면 넘어야 하는 장벽이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는 정신과 진료 기록이 취업 등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오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의료법은 의료기관이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련 기록 열람을 허락하지 못하도록 한다. 거기에 쐐기를 박는 것은 정신건강복지법이다. 누구든지 정신질환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다는 이유로 교육, 고용, 시설이용의 기회를 제한하면 안 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구직과정에서의 페널티는 건강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두 번째 이유는 병가를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바쁜 현대인이 시간을 내서 병원을 방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쓰는 것이 ‘병가’가 아닌가. 그런데 정신질환은 그 고통이 타인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문서로 표현하기 어렵다. 실제로 홍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직장인 중에서 우울증으로 인해 병가나 결근을 낸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31%로, 그중 3분의 1의 가까운 인원이 고용주나 동료에게 우울증으로 병가를 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두 현상은 모두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부족한 이해의 산물이다. 정신질환을 ‘질환’ 그 자체로 이해했다면, 병력이 취업에 불리할 것이라는 식의 의심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감기에 걸렸던 기록 때문에 취업 시장에서 실패를 맛보진 않지 않나. 병가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직장 동료와 상사가 정신질환의 특성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있다면 병가쯤은 제출하기 쉬운 분위기가 이뤄질 텐데 말이다. 

 

“마음 아픈 환자들 고치는 놈이, 마음 아파서 상담 좀 받았다. 어쩔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온 대사다. 극 중 정신과 의사인 성동일은 과거에 정신적으로 고통 받았던 경험이 있다. 이를 동료 의사가 비꼬자 성동일은 위와 같이 말하며 동료를 쏘아붙인다.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이는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한 경험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질환자들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동정 어린 눈빛이다. 정신질환자는 미치광이가 아니다.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자일 뿐이다. 

 

*틱장애 : 순간적인 눈 깜빡임, 목 경련과 같이 갑작스럽고 빠르며 반복적, 비율동적, 상동적인 움직임이나 소리를 내는 장애

**홍진표 외 3인 「한국 직장인에서 우울증의 인식과 태도조사 및 우울증이 근무에 미치는 영향」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