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52번가의 허와 실을 짚어보다

“우리는 그런 거 몰라요”

이화 52번가(아래 52번가)는 지난 2016년 52번가 조성 사업으로 조성된 거리다. 하지만 약 2년이 지난 지금, ‘이화 52번가’라고 적힌 팻말이 걸린 가게의 사장님들은 52번가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연신 ‘모른다’고만 답했다. 거리를 가득 채운 52번가 팻말이 무색하게끔, 52번가 사업은 종적을 감췄다.

 

이화 52번가의 정체를 찾아서

 

52번가는 서대문구청과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아래 산학협력단)의 지원을 받아 조성됐다. 지난 2016년 3월 11일 ‘이화 스타트업 52번가’ 오프닝 행사를 시작으로 같은 해 6월 청년몰* 사업지에 최종 선정된 것이다. 산학협력단이 사업 전반을 기획했으며, 서대문구청의 금전적 지원이 보태지면서 사업의 규모가 확장됐다. 산학협력단 소속 임성은 팀장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 52번가는 임대가 안 돼 빈 점포뿐이었다”며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공간이라 골목 상권을 살리면서도 이대 학생들이 창업을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52번가 사업은 ▲청년 창업을 지원했다는 점 ▲골목상권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서대문구청에 따르면, 52번가 상점으로 선정된 가게는 약 1년간 임차료의 일부와 창업 교육을 지원받았다. 그 외에도 점포에 따라 ▲인테리어 지원 ▲공통 쇼핑백과 비닐백 배부 ▲SNS 홍보 ▲안내판 설치 ▲거리 미화 ▲점포 인증 깃발 등을 지원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52번가 사업은 청년 상인들이 운영하는 22개 점포에 힘을 실었다. 경양식을 비롯한 음식점부터 생활 한복을 파는 옷가게까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끄는 개성 있는 상점들이 지원을 받았다. 지원받은 가게들 중 일부는 사업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52번가에 있었으나, 사업을 통해 꿈꿔온 창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들도 존재했다. 52번가 거리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A씨는 “당시 사업 참여가 창업의 계기를 마련했다”며 “온전한 내 매장을 통해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돼 사업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2번가는 이대 옆 공터에 골목상권을 조성했다는 의의도 지닌다. 이에 대해 임 팀장은 “52번가가 공실이 많을 땐 이대생들이 잘 찾지 않는 낙후된 공터였다”며 “그곳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사업 시작 이전부터 52번가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맛잇스시’의 이석원 대표 역시 “가게 운영을 시작할 당시에 비해 사업 이후 거리에 가게가 많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전했다. 사업의 의의는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에게도 인정받았다. 지난 6월 두 기관이 주최한 ‘2018 대한민국 국토대전’ 특별부문에서 한국도시설계학회장상을 수상했다.

 

 

52번가 상점 없는 52번가 거리

 

그러나 52번가 사업은 지속되지 못했다. 52번가의 가게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현재 ▲패션&생활용품 5곳 중 0곳 ▲문화&서비스 9곳 중 1곳 ▲음식 7곳 중 4곳 ▲IOT**1곳 중 0곳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선정된 총 22군데의 가게 중 현재 남아있는 가게는 총 5군데에 불과한 것이다.

52번가 사업이 실패한 원인으로는 ▲짧았던 지원 기간 ▲개인의 준비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짧은 지원 기간이 52번가의 실패 원인으로 꼽혔다. 52번가가 가게를 지원해주는 기간은 1년이다. 하지만 지원의 효과가 드러나기까지는 1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업에 참여했던 B씨는 “사업이 손님에게 인지되기까지 개업 후 2개월 정도가 소요됐고, 상권 특성상 여름·겨울방학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영업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이는 정착하는 데 충분한 기간이 아니다”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임 팀장은 “짧은 사업 기간 내에 점포 임대나 인테리어 지원까지도 이뤄졌다”며 “상인들이 자생력을 가질 충분한 지원 기간은 아니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 팀장은 “임대료 이외에도 다른 지원 방법을 찾거나 1차, 2차로 정착할 수 있게끔 순차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원에만 의존한 창업가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이 대표는 “준비가 부족한 채로 창업에 도전한 젊은이들이 지원이 끝나는 1년 후 가게를 빼는 경우가 많다”며 “사업자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 D씨 역시 “지원이 끊김과 동시에 청년 창업가가 떠난 경우를 여럿 봤다”며 “지원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 창업자들은 가게 운영 경력이 충분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청년 사업자들이 타깃 선정에 실패했다는 의견도 있다. 주 고객층인 이대생의 수요에 맞지 않는 콘셉트의 가게가 대부분이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22개 상점 중 10곳이 민화를 주제로 한 아트 상품이나 수제화, 수공예품 등의 개인 창작물을 판매하는 가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화여대 김세원(국제학부·17)씨는 “52번가에 위치한 식당은 종종 방문한다”면서도 “액세서리나 캐릭터 상품 등을 판매하는 가게에는 발길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업에 참여해 현재까지도 52번가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C씨 역시 “몇몇 청년 창업자들이 상권 분위기에 맞지 않는 가게를 운영한 것이 실패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대문구청 도시재생과 관계자 E씨는 “지원뿐만 아니라 상인들의 노력도 필요하다”며 “이후 청년몰 사업은 1년 후 전문가 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52번가 사업은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지속에는 실패했다. 이화패션문화거리, ‘이파로’는 52번가 사업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시행될 예정이다. D씨는 “이파로 사업은 지원 기간을 최대 3년으로 늘리고, 사업 시작 1년 미만의 사업자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도 삭제했다”고 말했다. 이파로를 비롯한 신촌의 도시재생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신촌을 살리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청년몰:  전통시장과 상점가 내에 빈 점포로 방치된 500㎡ 내외의 일정 구역을 39세 이하 청년들이 입점한 점포(20곳 이상), 고객을 위한 휴게 공간, 커뮤니티 공간 등을 갖춘 몰 형태로 조성한 곳. 청년몰 조성과 청년 창업에 필요한 비용이 지원된다. 

**IOT: Internet of Things의 약자로, 사물끼리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사물인터넷’을 지칭한다.

 

글 신은비 기자
god_is_rain@yonsei.ac.kr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사진 정구윤 기자
guyoon1214@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