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조, 아직도 갈 길 멀다

이정연 (역사문화·17)

1.

드라마 『송곳』 장면 중 하나다. 작중 주인공 ‘이수인’이 질문한다.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이고 점장도 프랑스인입니다. 그런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작중 노무사로 등장하는 ‘구고신’이 답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2.

포털사이트에 노조를 검색하면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의 키워드가 뜬다. 관련 기사를 눌러 댓글을 살펴본다.

“귀족노조는 싹 다 망해야 한다, 노조는 나라를 좀먹는 집단들,

노조 있는 현대는 망하고, 노조 없는 삼성은 승승장구…”

3.

오늘날 한국 사회 속 ‘노조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노조’는 흡사 ‘빨갱이’다. 냉전 시대의 유물로 남은 ‘그 단어’를 우린, 지금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노조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은 상당히 편향돼 있다. 공익 따위는 무시하고 사익 추구를 위해 똘똘 뭉친 이기적 집단으로 포장되곤 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성을 느낀다. ‘노조는 원래 이기적인가?’. 필자는 여기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무엇이 노조를 이기적으로 만들었나?’. 필자는 “우리 사회”라고 답하겠다. 노조가 습관적으로 파업을 하고, 공장과 일터를 점거하며, 단식 투쟁과 삭발을 불사하고, 공권력과 무력 충돌하는 것을 “노조 때문이야”라고 몰아붙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노동조합에 우리나라는 지옥이다. 우선 설립부터 쉽지 않다. 조합원 모집을 위해 간담회나 교육 일정을 잡아도 회사가 이를 방해한다. 사내 교육 일정을 잡거나 별도 업무 지시를 내리는 식이다. 우여곡절 끝에 조합원을 모아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해도 사측의 무시와 탄압이 이어진다. 노조 위원장은 자신을 밀착 감시하는 보안요원의 눈길을 매순간 느껴야 한다. 조합원에겐 업무 과정에서 직간접적 차별이 가해진다. 조합원은 날로 쪼그라들고 노조 간부진은 경제적·업무적 압박에 시달린다. 노조 탈퇴서를 제출하는 조합원의 손엔 죄책감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가득하고, 괜찮다며 애써 말하는 노조 간부의 눈시울엔 눈물이 맺혀있다. 어느 회사는 노조 위원장의 지문인증을 삭제해서 회사 출입을 막았단다. 조합원조차 편히 만날 수 없는 노조 위원장의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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