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시작과 끝이 있다. 삶은 그 사이에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죽음과 가까워진다. 언제 죽을지 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정할 수 있다.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배우고, 실천하려는 이들이 있다. 잘 죽는 법, ‘웰다잉’을 소개한다.

 

웰다잉, 그 시작은 의료계에서 


지난 2008년 12월 12일 뉴질랜드, 응급실에 환자가 실려 왔다.
그러나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할 수 없었다. 79세 노인의 가슴팍에 새겨진 
‘심폐소생술 금지(DO NOT RESUSCITATE)’ 문신 때문이었다.


중환자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다. 중증 환자에게 24시간 내내 강력하면서도 집중적인 치료가 가해진다. 장기간 연명치료 끝에 생을 마감하는 환자는 연간 5만 명이다. 환자와 가족 모두 고통스럽다. 중환자실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란 어렵다.

하지만 지난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환자 본인이 생명권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연명의료를 유보·중단한 환자는 2만 742명이다. 제도 시행 초 3천200명보다 약 7배 늘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 작성도 가능해졌다. 사전의향서는 임종 상황에서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의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서류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지정한 ‘등록기관’에서 작성한다. 사전의향서는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 각당복지재단 오혜련 상임이사는 “의식 있는 상태에서 환자가 연명치료를 희망할 경우, 환자 의사를 사전의향서보다 우선한다”고 덧붙였다.

사전의향서 작성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3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누적 등록자는 7만 3천150명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1만 4천305명 증가한 수치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박인경 팀장은 “사전의향서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으로써 적극적으로 장려된다”며 “카드뉴스, 동영상, 방문 상담 등을 통해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여론도 호의적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설문 조사 결과, 성인남녀(만 19세~59세) 1천 명 중 78.1%가 ‘연명의료결정법 찬성 입장’이다. 비율은 각각 20대 66%, 30대 75.6%, 40대 85.2%, 50대 85.6%를 기록했다. 중장년층일수록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웰다잉, 한국 사회에선?

 

긍정적인 여론과 별개로 한국 사회에는 웰다잉 문화 정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려면 거쳐야 하는 현행법상 절차가 대표적이다.

뇌사를 판정받은 환자는 의식이 없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한다. 의료진은 회복 불능 판단 시 가족에게 연명의료 중단을 권한다. 환자가 사전의향서를 미리 썼다면 문제없다. 사전의향서가 없거나 환자의 의사표현이 불분명한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가족 전원’(19세 이상의 배우자 및 직계혈족)이 연명의료 중단에 동의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가족을 수소문하고 관계 증명을 위해 서류를 뗀다. 그동안 시간은 며칠씩 흐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6월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이 연명의료결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가족’의 범위를 1촌 이내의 직계 존속·비속으로 좁히는 골자였다. 현재 개정 법률안은 수정 가결된 상태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가 없는 병원에선 사전의향서가 있어도 연명치료 중단이 불가하다. 윤리위는 5명 이상으로 구성하되, 의사가 아닌 위원 2명을 포함해야 한다. 지난 2월 기준, 윤리위가 설치된 상급종합병원은 54.2%에 달했다. 이 비율은 하급 병원으로 갈수록 급격히 낮아졌다. 종합병원은 10%, 소형병원은 0.1%, 요양병원은 0.3%에 그쳤다.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연명 치료를 중단할 권리를 누리기 어렵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5월 권역별 공용윤리위원회 8곳*을 지정했다. 그러나 불과 8곳의 공용윤리위원회로 연명치료 중단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복지부는 오는 12월까지 시범운영 후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죽음의 문화화(化), 죽음도 준비하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이들도 있다.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20·30대들이다. ‘메모리포유 스튜디오’ 이슬기 대표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추모공원에 촬영차 다녀온 것이 우연히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젊은이들은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놓지 않아 추모공원 영전에 프로필·학생증 사진을 걸어놨더라”며 “고인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오래도록 바라볼 얼굴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이 영정사진을 찍는 데는 몇 가지 사전 단계가 필요하다. 자신의 마지막을 직면하면서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우선 지원자는 문답지를 작성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인데, 대개 쉽사리 답을 적지 못한다. 지원자 한 사람당 60분가량 소요되는 게 보통이다. 그 시간의 대부분은 사진작가와 지원자의 대화로 채워진다. 지원자의 ‘본인다움’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대화가 끝나면 지원자는 푯말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선다. 푯말에는 다양한 글귀가 적혀있다.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어’, ‘먼저 가서 기다릴게’ 등 가지각색이다. 그런 지원자에게 이 대표는 ‘마지막 표정’을 주문한다. 울어도 좋고, 웃어도 좋다. 다른 사람들이 기억할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다. 사진 촬영을 앞둔 지원자의 얼굴엔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지원자도 적지 않다. 촬영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이처럼 일찍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노년교육학회 한정란 회장은 “연령과 무관하게 죽음 준비가 필요한 오늘날이지만, 학교는 젊은 세대에게 죽음관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청년이 영정사진을 찍는 등 사전에 죽음을 경험하는 행위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생사학(學)’, 죽음도 배워야 한다

 

초창기 죽음 교육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강연장에선 20·30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7일, 기자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會)’ 윤득형 회장의 ‘웰다잉 지도사 전문강사과정’ 강연 현장을 찾았다. 이날 수강생 양영희씨는 초등학생 4학년을 대상으로 한 죽음 강의를 시연했다. 양씨는 동화책 「무릎딱지」를 읽으며 어린 아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뤘다. 아이가 죽음을 겪으며 상처 받는 대목에서 수강생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강연 종료 후엔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단어 사용과 수업 진행방식에 대한 피드백이 이뤄졌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會)는 27년간 죽음 담론 확산을 위해 힘써온 단체다. 윤 회장은 “한국사회에서는 죽음을 금기시하고, ‘죽었다’는 직접적인 말을 꺼린다”며 “제대로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는 지금까지 2천 명이 넘는 웰다잉 지도사를 배출했다. 윤 회장은 “죽음 교육은 결국 삶에 대한 교육”이라며 “삶은 죽음을 통해 성장하고 슬픔은 표현을 통해 치유된다”고 전했다.

 

늘어가는 고독사, 같은 상황 다른 대처 

 

고독사는 연고 없이 사망한 죽음을 뜻한다. 시체를 수습할 사람이 없는 탓에 고독사 대다수가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되는데, 고독사로 골치를 앓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일본이다.

직접적 원인은 고령 인구·1인 가구 증가다.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지난 2015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전체 가구 중 34.5%가 1인 가구라고 밝혔다. 여기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인구 특성도 한몫한다. 지난 9월, 일본 전체 인구 중 70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20%을 넘었다. 고독사 논의에 불이 붙을 수밖에 없다.

고독사에 대한 일본의 관심을 잘 보여주는 상품이 ‘고독사 보험’이다. 현재 일본에선 고독사 보험 십여 개가 판매되고 있다. 고독사한 망자의 시신 수습부터 유품 정리, 임대료 일부 지급 등이 모두 보험에 포함된다.

한국 역시 고독사 안전지대가 아니다. 고독사로 추정되는 무연고 사망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2천110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 제도로는 이를 감당하기 버겁다. 당장 큰 폭으로 증가하는 무연고 사망자를 수습할 공영장례시설이 부족하다. 전국 장례식장 1천89곳 중 공공·민간을 막론하고 무연고자 장례시설은 68곳뿐이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장례비용도 1구당 75만 원 수준에 그친다.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시는 무연고자 시신의 화장 비용으로 1구당 25만 엔(약 247만 원)을 부담한다.

 

고독사 시신은 대개 썩은 악취로 알아차린다.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점이다. 죽음에도 품격이 있다. 무연고 사망자 수습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공용윤리위원회 8곳: 공용윤리위원회로 지정된 의료기관은 고려대 구로병원(서울 서부), 국립중앙의료원(서울 동부), 국립암센터(경기·인천), 충북대병원(대전, 충북, 충남, 세종), 전북대병원(광주, 전북, 전남), 영남대병원(대구, 경북), 부산대병원(부산, 울산, 경남), 제주대병원(제주)이다.
**무연고 사망자: 신원이 확인됐음에도 시신을 수습할 사람이 없는 이들을 의미한다.

 

글 김민정 기자
whitedwarf@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자료사진 메모리포유 스튜디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