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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토불이] 혐오의 시대, 소록도에서 해답을 고민하다『당신들의 천국』에서 찾은 경계 허물기
  • 박윤주 기자, 박건 기자
  • 승인 2018.11.04 21:08
  • 호수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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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가장 뜨거운 화두는 ‘혐오’다. 혐오의 역사는 유구하다. 과거부터 수많은 집단이 그 대상이 돼 왔다. 

과거로 돌아가 혐오와 차별의 민낯을 대면한다면 그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지독한 차별에 시달리던 한센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자는 해답을 찾고자 소설 속 배경인 남쪽 작은 섬, 소록도를 방문했다.

 

소록도는 어떻게 
‘사자(死者)의 섬’이 되었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한센인을 임의로 소록도에 강제 감금했다. 치료받지 못하고 유랑하거나 걸식하는 한센인이 국가 위상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센인들은 강제적인 단종수술*과 노동력 착취를 포함한 인권 탄압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기동이 가능한 원생들은 남녀 노유를 가릴 것 없이 작업장으로 몰아내는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작업 방법도 가위 강제 노역장을 방불케 할 만큼 가혹스러웠다. … 눈에만 벗어났다 하면 죽도록 매를 맞고 감금실 신세가 되었다. 감금실을 다녀오면 또 가차 없이 단종 수술이 강행됐다.
『당신들의 천국』 中
 

국립소록도병원 옆 중앙공원은 한센인의 고통이 깃든 장소다. 중앙공원은 역대 병원장 중 가장 악랄했다고 평가받는 일본인 원장 스오 마사스에(周防正季)가 만든 것이다. 소록도가 한센인의 천국으로 바뀌었음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공원은 오히려 소록도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수많은 한센인이 공원을 만드는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그들의 피땀 위에 건설된 공원은 역설적으로 아름다웠다.

중앙공원 한쪽에는 예수상과 그를 지켜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다. 예수상이 있는 자리는 옛 벽돌공장 굴뚝 터다. 본래 벽돌공장은 소록도 내 건물을 짓기 위해 세워졌다. 하지만 결국 일본의 군자금 마련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당시 일본은 중국과 전쟁 중이었다. 강제노역에 동원된 한센인의 손은 벽돌공장의 뜨거운 화로에 짓이겨졌다. 살기 위해 온 병원에서 죽어갔다. 그들의 모습과 고난을 당해 죽은 예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중앙공원 옆의 감금실과 검시실 역시 한센인의 한이 맺힌 공간이다. 강제노역 등 원장의 요구를 거부하는 한센인은 어김없이 감금실로 보내졌다. 감금형이 끝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단종수술이었다. 유전병도 아닌 한센병을 앓는다는 이유로 이들의 생식능력은 박탈됐다. 검시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모든 한센병 환자들의 시체는 이곳에서 해부용으로 사용됐다.
 

“이 섬에선 어디서나 죽은 자들만이 말을 하고 있어요.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요. 이젠 모습도 찾아볼 수 없는 동상이 말을 하고, 섬을 빠져나가다 물귀신이 되어간 사람들이 말을 하고, 그리고 그 납골당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망령들이 말을 하고…”


소록도는 ‘살아선 말을 못하는’ 곳이었다, 고통받을 육체가 사라져야만 그 한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전하는 곳이었다.


약자에겐 강하게,
강자에겐 약하게

 

광복 후에도 소록도의 고통은 계속됐다. 원장 한 명이나 일제가 아닌, 사회가 한센인을 차별했다.

당시 소록도 내 한센병 환자 5천 명 중 3천 3백여 명은 완치를 판정받은 음성 환자였다. 그러나 이들은 소록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병력만으로도 사회는 그들을 거부했다. 오마도** 간척사업에는 그런 거부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기자는 ‘오마리’로 이름이 바뀐 전라남도 고흥군 간척지 일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넓은 간척지 한쪽에는 오마간척한센인추모공원이 마련돼있었다.
 

오마도 간척사업을 처음 계획한 인물은 조창원 원장이었다. 지난 1961년 국립소록도병원에 부임한 그는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의 실제 모델이다. 조창원 원장은 절망에 빠져 살아가는 한센인들에게 생활 터전을 마련해주려 했다. 고흥 반도 남쪽 득량만을 막는 간척사업은 그 일환이었다. 한센병 음성 환자들은 3년간의 공사에 자발적으로 임했다. 시작은 투석작업이었다. 둑을 만들기 위해 바다에 무작정 돌을 던져넣는 과정이었다. 둑이 오르면 가라앉기를 수번, 한센인들은 뭉개진 손으로 돌을 나르며 1천500m의 방조제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간척사업이 성공될 기미가 보이자 육지 주민들이 반발했다. 간척지를 한센병 환자들에게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가올 6대 총선을 의식한 군사정부는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하다는 명목으로 사업주도권과 토지분배권 모두 전라남도 차지가 됐다. 정치세력을 등에 업은 주민들은 한센병 환자들이 목숨 바쳐 쌓아 올린 방조제를 순식간에 강탈했다.

원망스러운 것은 아량과 관용이 없는 선거 제도였는지도 모른다. 모든 승부를 수의 우열 한 가지로 결정짓고 마는 기계적인 선거 제도란 바로 그 수의 거래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결국 간척사업은 외지인에 의해 마무리됐다. 지난 1988년의 일이었다. 간척지 역시 뭍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조창원 원장은 이를 두고 “성한 사람들과 정부가 한센인을 돕기는커녕 마지막 희망마저 빼앗았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제정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은 오마도 간척사업에 따른 한센인의 피해를 인정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이렇다 할 보상은 없다. 맨손으로 돌멩이를 날랐던 한센인들은 소록도 내 납골당인 만령당에 잠들어있다. 1천만 m²에 달하는 간척지에 한센인의 땅은 단 한 뼘도 없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추모공원 꼭대기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자신의 몸을 바쳐 바다를 메우던 한센인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었다. 조형물은 과거 섬이었을 산봉우리들 사이로 농경지를 굽어보고 있었다. 차를 타고 몇 분을 달려야 끝이 보이는 그곳에선 주인 잃은 방조제만이 사나운 파도를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우리들의 천국, 
그 시작은 경계 허물기에서

 

기자가 다시 찾은 소록도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그대로 기억하면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담담히 아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소록도에서 한발 물러나 바라본 한국 사회에는 ‘또 다른 한센인’이 있다. ‘주류’에 의해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들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난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사람들은 ‘차별을 주장할 권리’를 말한다. 차별금지법은 벌써 세 차례나 입법 무산됐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공중파 방송에서 “성소수자는 우리의 문화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혐오가 우리의 ‘문화’, ‘정서’라고 인식할 정도다. 북한이주민, 난민, 무슬림 등 대상은 다양하다. 혐오는 매번 모양과 강도를 달리하며 나타난다.

사회적 약자를 자신의 생활 영역에서 격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투철한 의지를 보며, 오늘날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질문해본다. 차별받아 마땅한 이들은 없다. 누군가 혐오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들은 희생양이 됐을 뿐이다.

소설 후반부는 한센병 음성 환자 윤해원과 ‘건강인’ 자원봉사자 조미연의 결혼으로 마무리된다. 이들의 신혼집은 환자 구역과 건강인 구역의 경계에 마련된다. 그들의 결혼은 두 집단의 구분 자체를 허문다.
 

“다리의 이쪽과 저쪽이 한 동네 한 마을로 섞이고 화목해야 할 자리는 많습니다. 제가 두 분의 신접살림을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의 중간에 마련케 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은 그런 뜻에서였습니다 
… 
이제 두 사람으로 해서 그 오랜 둑길이 이어지고 길이 뚫렸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웃은 힘을 합해 그 길을 지키고 넓혀 나갈 것입니다 ……”

 

구조적인 차별을 없애는 길은 결국 시혜적인 지원, 배려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은 근본적인 경계 허물기에 있다. 소외된 집단을 연민으로 바라보기보다 그들과 부대끼며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센인이 겪은 지독한 고통은 결국 악인 한두 명이나 식민주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 전체가 그들을 차별했다. 『당신들의 천국』이 주는 섬찟함은 거기에 있다. 낯익은 혐오의 정서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는 아닐까.

 

 

 

*단종수술: 단종할 목적으로, 유전성 질병을 가진 환자의 생식 기능을 없애는 수술.
**오마도(五馬島): 고발도, 분매도, 오마도, 오동도, 벼루섬의 다섯 개의 섬이 말의 형태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라남도 고흥에 위치해 있다. 소록도와는 12km가량 떨어져 있다.
***직원 지대, 병사지대: 소록도 내 직원을 비롯한 건강인들의 생활 공간은 ‘직원 지대’ 또는 ‘건강 지대’로, 한센병 환자들의 생활 영역은 ‘병사 지대’라 불렸다.

 

 

글 박윤주 기자
padogachulseok@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박윤주 기자, 박건 기자  padogachulseo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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