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과 관련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일제에 강제징용된 약 22만여 명의 피해자들과 관련된 15건 등의 사건만을 다뤘다. 하지만 일제 치하에 이뤄진 군 위안부, 원폭 피해 등 다른 ‘반인도적 불법행위’ 등은 아직도 산적해있다.

이번 판결은 국민의 혼을 판 추잡한 사법 거래가 있었던 재판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지난 2005년 소가 제기돼 2012년 대법원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했다고 본 원심을 파기 환송한 후 대법원에 재상고된 지 5년 2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그 사이 법원은 판결을 지연하는 대가로 국민의 자존심을 팔아 ‘법관해외파견제도’라는 이권을 챙겼다. 법원행정처가 강제징용사건의 판결을 미루는 대가로 외교부로부터 해외 파견 법관 자리를 얻어 낸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2013년 12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강제 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2012년 5월 대법원판결 선고 3년 뒤인 2015년 5월 소멸한다.'는 내용의 문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이 고의로 판결 선고를 지연시켜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막으려는 파렴치한 불법행위를 시도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일본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 역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판결에 관련된 일본 기업들에 이미 해결된 사안이므로 개별적 배상이나 화해에 응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국제법에 위반된다고 밝혔고, 일본 외무상은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하는 한편 강경화 장관에게 항의하는 등의 비상식적 행위를 하고 있다. 한일 청구권협정은 국가 간 협정일 뿐 일본 정부나 일본 기업이 개인에게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것은 아니므로 이번 대법원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제야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일제하에 저지른 반인륜범죄는 소멸시효가 있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산적한 과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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