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과 한글날이 있는 10월, 성탄절과 함께 한 해를 떠나보내는 12월. 그 사이에 낀 11월은 이렇다 할 공휴일도 없이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매년 11월이 되면 누군가는 결전의 날을 맞는다. 셋째 주 목요일, 채 하루가 되지 않는 시간을 위해 수년간의 노력을 쏟아 붓는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는 참 많은 조언을 들었다. 모두 공부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국어 수업 자료 귀퉁이에 조그맣게 적혀있던 ‘대학의 문은 좁지만 우리는 날씬하다’, 인터넷 강의 선생님의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학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공부를 하지 않고서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 건 도둑 심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고3 시간표에 쓰여 있던 한 문장이다. ‘You Only Live Once(YOLO)’. 어감이 입에 착 붙으면서도 의미가 그럴 듯해 종종 곱씹곤 했다.

그때는 YOLO의 뜻이 ‘미래보다 당장의 행복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 정의는 고3 시간표에 어울리지 않았다. 한 번뿐인 인생이다. 고3도 딱 한 번뿐이니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내자는 뜻이었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유보하자는 말이었다. 본래 정의와 달라도 한참 달랐던 셈이다.

행복을 입시 후로 미룬 통에 다들 가졌다는 학창시절의 특별한 추억도 없다. 다만 그 시기는 길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연상시킬 뿐이다. 나는 그 속의 고슴도치였다. 마음에 돋은 가시가 주위 사람들을 밀어냈고, 내게도 끊임없이 상처를 냈다. 자습 시간에 떠들며 공부를 방해하던 친구들을 미워했다. 이미 아는 내용뿐인 수업을 들으라던 선생님들을 미워했다. 매일 나를 괴롭히던 걱정거리들을 싫어했다. 더 독하지 못한 나 자신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몇 가지 믿음 덕이었다. 이 터널만 벗어나면, 내가 무언가를 미워한 만큼 큰 행복이 나를 반겨줄 거라 믿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모두 치열했던 기억쯤으로 미화될 거라 확신했다. 그 뒤론 어떤 좁은 문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부둥켜안고 안도와 행복의 눈물을 흘릴 모습을 상상했다. 불행했던 지난날과 작별하고 새롭게 태어날 나를 그렸다.

결국 나는 터널 밖으로 나오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안도감이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험이 끝나도 나는 그냥 나였다. 하늘을 나는 느낌도, 벅찬 눈물도 없었다. 나를 부러워하는 남들의 눈빛도 없었다. 시험 이후의 시간은 그저 무던하게 흘렀다. 터널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울 만큼.

머지않아 또 터널이 나타났다. 이제는 심지어 한 개도 아니었다. 시작은 인생의 유일한 목표를 잃은 무력감이었다. 이어 입시를 방패삼아 미뤄온 진로 고민을 마주했다. 지난 몇 년과 맞바꾼 대학 간판은 ‘한때 공부를 잘했던 사람’임은 보여주지만, 결코 다른 터널들의 무사통과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은 일에도 가시를 세우는 버릇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행하다고 느껴졌던 건, 스스로에 대한 연민만 남은 채 되돌릴 수 없는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터널 안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응원을 받고 있었다. 힘들다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힘든 티를 낼 수 있었다. 가끔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격려와 조언이 들려왔다. 하지만 스스로 포기한 추억들과 내 가시 때문에 남은 상처를 위로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위로해줄 수 없었다. 다른 누가 아닌 나 스스로 낸 상처였기에. 목표 달성은 결코 그 시간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표에 적혀 있던 YOLO의 본래 의미를 되새겼다. 되돌릴 수 없는 그 시절을 위로할 수 있는 건 그 순간순간의 행복뿐이다. 결국 탈락했지만 발표 전까지 ‘정말 잘 봤다’며 자화자찬한 논술 시험, 처음엔 잠 깨려는 목적이었지만 나중엔 맛 들여 아침마다 마신 캔커피, 기말고사가 끝나고 연습생 때부터 좋아한 가수의 데뷔곡을 들었던 기억, 인터넷 강의 선생님의 딴소리, 죽상을 하고 다닐 때 건네받은 응원의 쪽지… 행복했던 기억이 많은데 그동안 터널 안으로 모조리 밀어 넣은 게 아니었을까. 그늘에 가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행복도 분명 많았으리라.

아주 사소할지언정 터널 안에도 행복의 순간은 있다. 상처를 준 건 시절 자체가 아니라, 그 시절을 불행으로만 못 박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부디 다른 수험생들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 더 많은 행복이 잊히기 전에. 스스로 위로하는 일조차 힘들어지기 전에.

글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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