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이 낳은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

가을을 맞아 쓸쓸한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가 인기를 끄는 요즘. 그러나 군사 정권이었던 지난 1980년대에는 음울한 분위기의 곡을 내기 어려웠다. 은연중의 압력으로 인해 방송에서는 밝은 노래만 흘러나왔다. 그런 시대 상황에 굴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당당하게 선보인 뮤지션이 있다. 신촌에서의 라이브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은 그룹 ‘신촌블루스’다.

 

신촌블루스는 지난 1986년 4월에 결성됐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신촌과 인연이 깊은 그룹이다. 리더 엄인호(67)의 추억이 묻어있는 장소가 바로 신촌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엄씨에게 ‘연대는 놀이터, 이대는 안방’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 덕에 신촌과 관련이 없던 동료 뮤지션들도 자연스레 신촌으로 모여들었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엄씨는 후일 신촌블루스 멤버가 될 故김현식, 이정선 등과 함께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교정에서 블루스를 연습했다. 당시에는 마땅한 연습실 자체가 없었다고. 그는 “잔디로 돼 있던 연세대 노천극장이나 세브란스 병원 등지에서 자유롭게 연주를 하곤 했다”고 전했다.

 

신촌블루스가 결성된 장소는 지금의 빨간 잠망경 건너편 골목에 있던 록카페 ‘레드 제플린’이다. 엄씨를 주축으로 이정선, 故김현식, 한영애, 정서용이 블루스 공연을 한 것이 그룹의 시작이었다. 레드 제플린은 원래 엄인호의 지인이 운영하던 카페로, 이후 지인의 부탁으로 엄인호가 잠깐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그 덕에 멤버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레드 제플린에서 공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직접 간이 무대와 음향 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들의 블루스 공연은 모두 엄인호와 이정선의 자작곡으로 진행됐다. 미국으로부터 유래된 블루스는 엄인호가 중학생 때부터 듣고 자란 장르였다. 오랜 시간 접하니 자연스레 블루스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외국의 유명한 블루스 음악을 따라 부르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직접 곡을 만들었다고. 후렴이 없는 전통적 블루스 대신, 우리나라의 곡 구성과 유사한 ‘어반 블루스’ 형식을 차용해 친숙함을 더했다.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한글 가사까지 더해져 신촌블루스는 점점 입소문을 탔다.

 

곧 록카페에 수용할 수 없는 규모의 관객이 몰렸다. 그러자 신촌블루스는 더 넓은 장소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바로 대학로에 있는 파랑새 소극장이다. 이들이 ‘신촌블루스’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갖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의 공연 직후였다. 당시 공연의 이름이었던 ‘신촌블루스’가 그룹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명세로 뉴스에까지 소개되면서 신촌블루스는 지방 공연을 다녔다. 나중엔 미국 LA에서도 공연을 했다.

 

신촌블루스는 매번 멤버를 새롭게 조합하며 특유의 ‘자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원년 멤버 故김현식, 정서용 이외에도 정경화, 이은미, 강허달림 등이 객원보컬로 활동했다. 그룹의 주축인 엄씨가 직접 자작곡에 어울리는 음색과 출중한 애드리브 실력을 가진 가수를 영입했다고.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는 “신촌블루스는 솔로로서도 독보적인 커리어를 이어간 여러 보컬리스트가 거쳐 간 그룹”이라고 말했다.

 

신촌블루스는 원래 음반 발매를 염두에 두고 결성된 그룹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연으로 실력과 인지도가 쌓이며 음반 제의가 여기저기서 들어오자, 신촌블루스는 지난 1988년 1집 ‘신촌블루스’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아쉬움’은 엄인호가 작사 작곡했으며 앨범에 수록된 8개의 곡 중 ‘나그네의 옛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이정선과 엄인호의 자작곡이다. 지난 1989년에 발표된 2집 ‘황혼’은 故김현식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앨범이다. 특히 그가 부른 타이틀곡 ‘골목길’은 신촌블루스와 김현식의 대표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는 지난 2015년 1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삽입돼 인기를 끈 곡이기도 하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신촌블루스는 한국 가요계의 전설로 남아있다. 지난 9월 발표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하 명반)'에 따르면, 신촌블루스의 1집이 72위, 2집은 27위에 올랐다. 선정 작업을 기획했던 이 평론가는 “신촌블루스의 1집과 2집은 시대를 넘어선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아주 절묘한 지점에서 잘 조합한 앨범”이라고 평가했다.

 

신촌블루스와 신촌의 인연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2014년, 엄인호가 후배 뮤지션들과 ‘신촌블루스 리바이벌’로 재결성해 신촌 CGV아트레온에서 콘서트를 한 것. 엄씨에게 앞으로도 신촌에서 공연할 계획이 있는지 묻자 “물론 하고 싶다”면서도 “신촌에 나와 같은 뮤지션이 공연할 만한 실내 문화공간이 없는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신촌이 이전처럼 문화의 거리가 되려면 일시적인 길거리 축제나 공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해체 후 솔로 활동을 할 때에도 엄인호의 이름 뒤에는 항상 신촌블루스가 빠지지 않는다. 엄씨의 말에 의하면, 신촌블루스의 활동은 결코 ‘끝내고 싶지도 않고, 끝낼 수도 없는 것’이다. 지난 10월에도 이정선과 엄인호가 함께 ‘2018 서울블루스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건재를 알렸다. 한국 블루스 록의 시작이자 정점으로 꼽히는 신촌블루스. 앞으로도 신촌에서 이들과 같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전설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글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자료사진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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