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골든서클』 속 버번위스키 이야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매너의 대상이 조금은 선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어쨌거나 『킹스맨』 시리즈가 그리는 젠틀한 신사의 이미지를 가장 잘 담아낸 대사가 아닐까.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영국 신사들의 액션이라는 신선한 설정으로 첩보물계에 한 획을 그었다. 지난 2017년에는 그 후속작인 『킹스맨: 골든서클』이 개봉했다.

영화는 영국의 비밀 정보 단체인 킹스맨 본부가 폭파되면서 시작된다. 생존한 요원 둘은 유사시 대처 매뉴얼이 담긴 ‘최후의 날 규약’에 따라 금고를 연다. 금고 안에 있던 건 위스키 한 병. 그들은 그 위스키병에서 ‘미국 켄터키’라는 힌트를 얻고, 미국에 위치한 사촌 격 조직인 스테이츠맨의 본부로 향한다. 그 뒤의 전개는 여느 영웅물과 다름없다. 킹스맨과 스테이츠맨이 힘을 합쳐 세계 정복을 꿈꾸던 악당을 물리친다. 결과적으로 위스키 한 병이 세상을 구한 셈이다.

그 위스키가 바로 버번위스키다. 이는 옥수수를 주 원료로 하는 미국 스타일의 위스키다. 대서양을 건넌 초기 미국 정착민들이 맥주와 럼의 원료인 당밀 대신 미국에 흔한 옥수수와 호밀로 만든 술이 바로 버번위스키라고. 버번은 원래 켄터키주의 군 이름이다. 19세기 초, 이 지방 농민들은 대개 농장 안에 소형 증류기를 놓고 위스키를 만들었다. 당시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미리 가공을 한 다음 강을 통해 배로 나르는 것이 경제적이었기 때문. 하지만 알코올 통제청에 따르면 이젠 버번이 아닌 곳에서도 버번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 대신 정식으로 버번위스키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선 ‘최저 51%의 곡식 발효 전국*’으로 증류돼야 한다. 이는 안쪽을 태운 통에 담아 숙성·착색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버번위스키가 만들어진 당시에는 알코올의 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화약과 술을 섞어 불이 붙는지의 여부로 알코올농도를 증명했다고. 이런 방식은 미국의 독자적인 알코올 도수 단위인 프루프(Proof)의 시초가 됐다. 이는 『킹스맨: 골든서클』에서도 등장한다.

“잘봐, 옛날에 해적들이 럼주의 도수를 시험하고 싶어 하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술을 화약에 약간씩 붓곤 했지. 만약에 화약이 불에 탔는데도 여전히 불이 붙는다면 럼이 좋고 효과가 만점이라는 것을 증명한거야.”

묶여있는 킹스맨 요원들에게 버번위스키를 뿌리며 스테이츠맨 요원이 한 대사다. 물론 실제로 불을 붙이진 않았지만 프루프에 대한 설명은 그들을 겁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킹스맨』에서 마초스러운 미국적 특색은 버번위스키를 통해 드러난다.

 

영국 신사의 첩보물에 마초스러움이라니. 이 엉뚱한 조합의 기저엔 미국과 영국을 대조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의 설정이 있다. 위스키계의 양대산맥이라 볼 수 있는 스카치와 버번위스키는 각각 영국과 미국에서 생겨났다. 때문에 두 나라를 대조하기 아주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극중 스테이츠맨 요원이 붙잡힌 킹스맨 요원들 앞에 버번위스키를 흔들 때 나온 킹스맨 요원의 대사를 보자.

“명예를 지키는 게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다. 그러니 당신들이 ‘위스키’라 부르는 그 싸구려 말 소변 같은 것을 내 눈 앞에서 치워줬으면 하네.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와는 비교도 안 되는, ‘e’**도 들어있지 않은 위스키를 말일세.”

졸지에 ‘싸구려 말 소변’이 돼버린 버번위스키. 두 손이 묶여있는 상태에서도 그가 고집했던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 두 위스키가 얼마나 다르길래.

맥아만을 증류해 스코틀랜드의 단일 증류소에서 만드는 게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다. 싱글몰트 스카치는 보통 와인을 숙성시켰던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따라서 과일 향과 꽃향기가 은은하게 난다. 그러면서도 드라이하고 톡 쏘는 한 방이 있다.

반면, 버번위스키는 불에 그을린 오크통에 숙성하기 때문에 탄내가 난다. 거기에 옥수수맛이 진하게 나는데, 오랜 숙성 기간만큼이나 그 풍미가 아주 깊다. 또 버번위스키는 다른 위스키에 비해 쓴맛이 덜하다. 칵테일의 베이스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맥주나 와인처럼 다른 주종과 섞어서 각각의 풍미를 한껏 돋궈 마시는 경우도 있다. 버번위스키는 옥수수 고유의 맛 때문에 맥아를 주재료로 하는 스카치보다 달짝지근한 맛도 은근하게 난다. 또 이가 오크통의 그을려진 부분과 섞여 카라멜향을 내기도 한다. 드라이하며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영국의 술과는 대조되는 미국의 술. 거칠고 강렬하지만 또 부드럽고 달큰한 끝맛. 팔색조의 매력을 갖춘 버번위스키는 감독이 그려내려던 ‘미국’이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버번위스키와 스카치 위스키가 만나 새로운 위스키들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1930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셰리 오크통 공급이 어려워지자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미국으로 눈을 돌려 버번위스키를 숙성시키던 오크통을 수입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다양한 원료와 오크통의 조합으로 새로운 풍미를 지닌 위스키가 생산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킹스맨: 골든서클』 또한 그랬다. 결국 영국의 킹스맨과 미국의 스테이츠맨이 힘을 모아 세상을 구하지 않았는가. 너무나도 다른 둘의 조합은 의외의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전국: 거르지 않은 술 또는 간장

**위스키의 영국식 표기는 whisky, 미국식 표기는 whiskey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사진 하광민 기자
pangm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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