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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박물관, 연세대 박물관윤현진 학예사와 함께하는 연세대 박물관 나들이
  • 신은비 기자, 박건 기자
  • 승인 2018.10.08 00:28
  • 호수 44
  • 댓글 0

아이와 함께 신촌에 왔지만 할 게 없어 고민 중인 부모님들은 주목하시라. 매일 똑같은 데이트에 지친 커플들도 주목하시라. 여가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사람, 평소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 모두 모두 주목하시라. 신촌 문화기행 그 첫 번째, 연세대 박물관이다.

윤현진 학예사*가 말하는 연세대 박물관에서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첫 번째

연세대 박물관은 우리나라 사립 박물관 중 가장 유서 깊다. 1928년 연희전문학교 시절, 원한경 부교장이 역사적 보배를 보전하기 위해 이곳을 만들었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190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이왕가박물관을 세웠지만, 연세대 박물관은 민간이 세운 최초의 박물관이다. 개관 소식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실릴 정도로 당시로서도 상당한 화제였다.

 

두 번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옆의 샛길로 들어가면 ‘연세 역사의 뜰’이 나온다. 몇 채의 한옥이 있는 이곳은 학생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예스럽고 고요한 분위기 덕분이다. 그런데 이곳은 원래 묘소가 있었던 자리다. 현재 연세대 루스채플 건물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데, 이 자리가 바로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묘가 있던 터다.

영빈 이씨는 임오화변**이 일어난 지 2년만인 1764년에 죽게 된다. 영조는 영빈 이씨가 죽은 후 나라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 큰 뜻을 기려 ‘의열(義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뿐만 아니라 후궁이었던 영빈 이씨의 묘를 도성과 가까운 곳에 정해주기까지 했다. 영빈 이씨의 묘는 당시 규율에 맞춰 봉분과 성물을 갖춘 ‘의열묘’가 됐다.

부속건물이 생긴 건 약 200년이 흐른 뒤다. 1899년, 고종은 본인을 대한제국 황제로 격상시켰다. 그의 직계 조상이었던 사도세자, 그리고 그를 낳은 영빈 이씨도 격이 올라갔다. 그 묘도 ‘의열묘(墓)’가 아닌 ‘수경원(園)’이 됐고, 격식에 맞춰 정자각과 비각, 재실(1960년대에 소실됨) 등 부속 건물 역시 생겼다. 하지만 묘는 지난 1970년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에 이장됐다. 이때 건물은 함께 가지 않았고 비각 안의 비만 갔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 뜰에는 총 세 채의 건물이 있다. 양쪽 가장자리의 건물은 각각 정자각***과 비각으로, 제사를 준비하고 비를 보관하는 부속건물이다. 그러나 가운데에 있는 건물은 영빈 이씨의 묘와 무관하다.

이는 1885년 알렌이 진료를 시작해 연세대의 시초가 되는 광혜원이다. 이 광혜원이라는 이름은 곧 제중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 정식 명칭은 제중원으로 알려져 있다.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에게 고종은 서양식 병원 부지를 하사했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홍영식의 가옥을 몰수해 제공한 것이다. 원래 광혜원의 위치는 신촌이 아니라, 지금의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동이었다. 지금 연세대에 있는 건물은 지난 1985년에 학교가 개교 백주년을 기념해 남아있는 사진을 보고 재현한 건물이다. 하지만 사진에 나오지 않은 옆과 뒷면은 상상을 통해 재현했기에 완벽한 복원은 아니었다. 이번 주말, 직접 연세대를 방문해 곳곳에 숨어있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찾아보자.

 

세 번째

지난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주장한 식민사관의 바탕이 됐다. 조선에는 구석기 문화가 없었으며, 중국이나 시베리아로부터 문화가 전파된 미개한 민족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1964년, 연세대 손보기 교수가 발굴단장으로 있던 공주 석장리에서 중기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와 후기 구석기 시대의 돌날이 출토됐다. 이는 최초로 한반도에도 구석기 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시베리아로 문화가 전파됐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손보기 교수를 주축으로 한 발굴단은 10년 동안 석장리를 발굴하며 우리나라 구석기 유물 발굴의 체계를 잡았다. 그동안 영어나 프랑스어였던 고고학 용어를 우리말로 표현하며 독자적인 표기와 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연세대는 국내 최고의 구석기 연구 기관이 됐고, 당시 육성된 제자들이 학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연세대 박물관 선사실에는 학교 측에서 직접 발굴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연세대는 지난 1964년부터 지금까지 순수 학술 목적의 발굴과 연구 성과를 내온 몇 안 되는 대학기관이다. 올여름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한 그물추가 그 증거다. 약 2만 9천 년 전 사용된 그물추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한 발굴결과였다.

가족 나들이를 갈 때도, 데이트를 할 때도, 박물관을 찾는 이들은 드물다. 윤 학예사는 “박물관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을 함께 담아놓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데이트나 나들이나 서로 시간을 공유하는 게 목적”이라며 “과거와 현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또 어디 있겠냐”고 덧붙였다.

 

*학예사 :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위하여 전시회를 기획·개최하고, 작품 또는 유물을 구입·수집·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또는 그 직업

**임오화변 : 사도세자가 뒤주 안에 갇혀 죽게 된 사건

***정자각 : 고무래 정(丁)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정자를 써 정자각이라고 부른다

글 신은비 기자
god_is_rain@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자료사진 연세대박물관>

신은비 기자, 박건 기자  god_is_ra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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