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우리대학교 원주캠은 교육부와 대학교육평가원에 의해 자율개선대학이 아닌 역량강화대학으로 판정받았다. 이는 말하자면 C급 대학이니 대학 수준에 맞는 학생 정원 축소와 특성화가 강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 당국이 ‘작고도 강한 대학’ 혹은 ‘교육이 강한 대학’이라면서 매년 되풀이한 특성화 비전은 이제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대학역량보고서 작성의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원주캠의 현실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 원인은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된 학부제의 병폐와 안일한 대학 운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명확히 살펴보지 않고 새로운 혁신은 있을 수 없다.

원주캠 설립은 1970년대 말 신촌캠의 닫힌 미래를 타개하기 위한 모색이었다. 신촌 교수들도 강의하기 위해 원주로 왔고, 통합 대학원 운영도 도입됐다. 하지만 이제 신촌과의 관련성은 거의 없어졌다. 또, 학과 중복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학전공’이라는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왜 ‘정경경제’로 불러야 하는가. 그리고 국어국문학, 영어영문학, 경영학, 수학, 물리학과 같은 중복 학과가 있다. 교수들은 연구와 교육 어느 쪽도 매진할 수 없는 상태다. 학부제 하에서 전공 교수들은 매년 11월, 2학년 진입생의 숫자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전공 선택은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특정 학과는 서열화된 구조 속에서 특혜를 누린다. 비인기학과 교수들은 대입시장에서 학과 우수성을 소개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아무리 전공교육의 특성화와 대학원 교육의 활성화에 노력했어도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었다. 이런 병폐를 그대로 둔 채, 대학 특성화와 학과 통폐합은 어불성설이다.

연세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학교 운영도 문제다. 원주캠 시설은 신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돼 있다. 캠퍼스 나름의 기획력과 교무 행정 기능도 참담하다. 학과 행정은 대학원생이 무급으로 맡고 있다. 학습 부진 학생을 위한 학습지원센터도 없다. 다수 학생이 기거하는 학교 앞 매지리 자취촌을 대학촌으로 바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이처럼 원주캠 학생들은 동일한 등록금 수준에 걸맞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조만간 혁신위원회가 대학 혁신안을 공포할 예정이다. 기대와 달리 정량적 지표 개선에 혁신 의제가 제출돼서는 안 된다. 이번 원주캠 혁신의 출발은 그동안 누적돼온 학부제와 학교 운영의 적폐를 해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대학의 장점이었던 인간적이고도 학문 지향적인 대학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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