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영 매거진부장 (사복·17)

내 방 창문에서는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꽤 가까이 보인다. 학생 전원이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해 집처럼 살던 곳이라 그런지 동창들은 졸업하고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종종 학교를 찾아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사는 나는 긴 수험생활이 끝난 직후 딱 한 번, 그리웠던 선생님들을 뵈러 학교를 찾아간 이후 더는 가지 않는다. 이쯤 되면 다들 생각하겠지. 아, 이 사람은 삭막한 학창시절을 보냈구나.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달콤한 꿈을 꾸다 깬 기분이 들 정도다. 매주 기다려졌던 스페인어 수업시간, 영상과 롤링페이퍼를 준비하며 친구들과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던 일, 야자를 땡땡이치고 놀러 나갔던 일, 음식물 반입이 금지됐던 기숙사에서 몰래 야식을 먹던 일 그리고 모든 게 서툴렀던 첫 연애의 추억까지. 즐거웠던 기억 투성이지만 첫 수능의 뼈아픈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일까. 그때가 많이 그리워도 추억의 장소를 방문해서 굳이 그때의 복잡했던 감정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진 않다. 이젠 많은 부분이 미화됐어도 열아홉 살에 겪은 인생의 첫 시련은 여전히 마주하기 힘든 상처로 남아있다.

무더웠던 이번 여름 방학에는 누구보다 바쁘게 살려고 노력했다. 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의 활동을 하며 한동안 돌보지 못한 나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방학을 보냈다. 가장 나 자신이 나로서 온전했던 순간을 손꼽으라면 단연코 요가를 하며 명상을 할 때와 몽골여행 갔을 때를 말할 것이다. 지금도 요가를 할 때 명상하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질 만큼 명상하는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다.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왜곡 없는 순수한 마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명상이다. 명상하는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일까. 명상은 지친 내면에 쉼을 주기에 제격이었다. 또한 과 동기들과 함께 한 일주일간의 몽골여행은 힐링 그 자체였다. 제대로 샤워조차 하기 힘든 오지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몸소 실천해보니, 나에게 있어서 ‘소확행’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밤하늘의 별을 보는 거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이렇게 나를 보듬어주는 방학이 필요했던 이유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내어줬지만, 그 끝에 텅 빈 마음만이 남아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삼수 학원 담임선생님께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해주신 말씀이다. 수험생일 때는 전혀 와 닿지 않던 말인데, 지나간 연애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비록 끝은 허무했지만, 진심을 다했던 순간들만큼은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자는 생각까지. 이마저도 여름 내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비로소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뭐든 처음 경험하는 일들은 한없이 특별하면서도 동시에 어렵게 느껴진다. 내겐 올봄에 막을 내린 풋사랑이 유독 그랬다. 왜 헤어졌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사랑이 식어서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애초에 그게 정말 사랑이었냐는 꼬리 질문에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마 시간이 더 흘러 수년이 지난 후에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참 귀여운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하지만 아직 나는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아름다운 추억이 많지만 헤어질 무렵에 받은 상처와 쓰린 기억들은 열아홉 살 때를 떠올리는 것처럼 마주하기 힘들다.

인생 처음 좌절을 겪은 열아홉 살의 나와, 밤바람이 그리 차지 않던 2018년 늦봄의 나에게 진정한 위로를 건네려면 아픔을 더는 기억 저편에 덮어두고만 있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마주하기 힘든 상처가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피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과거의 아픔을 통해 배운 게 정말 많다고,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나는 점점 더 멋진 사람이 돼가는 중이라고, 그리고 새로운 사랑은 또 한 번 속는 셈 치고 영원할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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