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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시인 김수영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 김채린, 이승정, 하수민, 박건 기자
  • 승인 2018.09.30 23:37
  • 호수 1818
  • 댓글 0

고(故) 김수영 시인의 생전 모습을 짐작케 하는 도봉구의 문학관과 시비, 그리고 종로구의 생가 터에 다녀왔다. 김 시인의 작품과 그가 남긴 메시지를 되새기는 여정이었다.

어지러운 시대에 자유와 정직을 외친 시인

▶▶김수영 문학관 2층엔 김수영 시인의 사진들이 전시돼있다.

「나는 이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나는 자유를 위하여 출발하고 포로수용소에서 끝을 맺은 나의 생명과 진실에 대하여

아무 뉘우침도 남기려 하지 않습니다」

- 시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 포로 동지들에게」 中

한때 김 시인의 본가가 위치했던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는 김수영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김 시인의 작품과 육필 원고, 친구와 가족에게 직접 남긴 서신 등이 전시돼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김 시인이 남긴 것들을 통해 그가 염원했던 자유의 숭고함이 느껴졌다.

인간으로서 김 시인은 평탄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한국전쟁에서 의용군으로 징집된 것을 시작으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는 고초를 겪었다. 상주사심(常住死心)*, 그의 좌우명은 시인이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전쟁은 끝났지만 김 시인은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 등 현대사의 비극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시인의 작품을 관통하는 ‘자유’와 ‘정직’의 가치가 탄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인의 작품을 연구해온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 이영준 교수는 “김 시인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개념을 벗어나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결정하는 자유’로까지 개념을 넓혔다”고 말했다. 어지러운 시대 상황에서도 본인의 생각과 목소리를 정직한 시로 남기는 것, 지식인의 표본 아닐까.

자연의 생동감을 노래하다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중략)…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달나라의 장난』 중 「비」 中

문학관을 뒤로 하고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도봉산 자락에 김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김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 동료 문인들이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시비에는 김 시인의 대표작이자 유작인 「풀」이 새겨져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현실 참여적인 동시에 쉽게 눈에 띄는 자연물에서도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시인이었다.

그런데 김 시인이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 해석이 분분하다. 우리는 학창시절 그의 시에 등장하는 풀을 민중으로, 바람을 외세로 배웠지만 정작 김 시인은 자연물 자체에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문학계의 평이다. 대신 그는 자연 그 자체를 온몸으로 느꼈다. 「풀」뿐만 아니라 「비」, 「폭포」 역시 마찬가지. 땅으로 꽂히는 비에서는 사람들의 가슴으로 꽂히는 비애를 느꼈다. 오늘날 자신의 시가 천편일률적으로 해석돼 교과서에 실린 것을 보면 시인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일상을 통해 이상을 전하다

▶▶서울시 종로구에 취치한 김수영의 생가 터 표석

“그러다가 며칠 후에 다시 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것은 마루의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의 조용한 물 끓는 소리다. 갓난애기의 숨소리보다 약한 이 노랫소리가 <대통령 각하>와 <25시>의 거수(巨獸) 같은 현대의 제악(諸惡)을 거꾸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지만, 못 거꾸러뜨린다고 장담하기도 힘들다.”

-「삼동유감(三冬有感)」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 탑골 공원을 마주보고 있는 이곳에는 김 시인이 태어난 생가 터가 남아있다. 지금은 한때 김 시인이 살았던 곳임을 알리는 표식만이 눈길을 받지 못한 채 서있다. 할 것도 볼 것도 많은 세상이 됐기 때문일까. 김 시인은 이렇게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는 것들, 일상을 시로 담아내곤 했다.

김 시인은 감각의 역치를 낮춰야 한다고 말하며 일상의 세세한 부분들에 집중한 작품을 썼다.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에 글을 썼다”는 김 시인의 말은, 마음에 파문을 던지는 시상이 일상으로부터 올 수 있음을 뜻한다. 문학의 핵심은 구체성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편성에 가닿는 것. 그는 시로써 사람들이 작은 것에 귀 기울이게 만들 때,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믿었다.

일상적 사물에 대한 이런 관심은 그의 시에 일상어가 빈번히 사용되는 것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김 시인은 시가 고상한 표현이 아닌 일상적인 표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와 현실을 합치시킨 것이다. 김 시인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어떠한 의미나 정의도 부여하지 않고, 그 자체를 일상적 언어로 표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김수영의 시와 산문이 여전히 편하게 읽히면서도 색다른 울림을 주는 이유다. 김수영의 글은 살아있는 기록이다. 깨끗하고 정직한 기록이다.

김 시인에게 시란 “여태껏 없었던 세계가 펼쳐지는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그는 시인은 삶 전체를 관조하고 그 이상의 세계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인은 보통 사람이 자각하지 못하는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김수영. 그는 진정한 예술가이자 사상가였다.

*상주사심(常住死心):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라

글 이승정 기자
bodo_gongju@yonsei.ac.kr
김채린 기자
bodo_baragi@yonsei.ac.kr

사진 하수민 기자
charming_soo@yonsei.ac,kr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김채린, 이승정, 하수민, 박건 기자  bodo_barag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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