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 속 코스모폴리탄 이야기

요즘 들어 칵테일을 찾게 된다. ‘먹고 죽는’ 분위기보다는 세련된 분위기의 술자리를 좋아하게 돼서 그렇다. 칵테일바에선 무수히 많은 종류의 칵테일을 접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우습게도 항상 마시는 칵테일을 고르게 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새내기 시절, 선배가 데려간 바에서의 일이다. 나는 이름을 들어본 몇 안 되는 칵테일 중 하나를 주문했다. 칵테일 하나 고르는 일이야 별 거 아닌 척, 세련된 도시사람인 척 하며. 내 선택은 코스모폴리탄이었다. 그 귀여운 허세 속에는 유년시절 몰래몰래 봤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향이 분명히 존재했겠지.



드라마로 시작해 영화까지 나올 정도로 매니아층이 두터운 『섹스 앤 더 시티』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사랑스러운 칼럼니스트 ‘캐리’, 염세적인 변호사 ‘미란다’, 솔직하고 발랄한 광고대행사 CEO ‘사만다’, 결혼해 예쁜 아이들을 낳는 게 꿈인 ‘샬롯’까지. 각자 개성이 강한 네 인물의 뉴욕 생활은 자주적이고 낭만적이다. 기존 매체가 남성 중심 판타지에 여성 인물을 편입시켰다면, 『섹스 앤 더 시티』는 여성들의 환상을 온전하게 그려냈다. 자연히 여성 시청자들은 『섹스 앤 더 시티』에 열광했다, 드라마에 등장한 구두나 가방은 ‘완판’ 되기 일쑤였다고.


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코스모폴리탄의 유명세를 『섹스 앤 더 시티』의 덕으로 돌린다. 등장인물들의 술자리엔 이것이 항상 함께했기 때문. 그들은 바에 갈 때마다 “Another Cosmo, please”를 외친다. 햄버거집에 가서 치즈버거, 감자튀김과 함께 주문할 정도다. 네 친구들의 화려한 삶을 동경했던 시청자들에겐 자연스레 그 일부인 코스모폴리탄도 동경의 대상이 됐다.‘세련된 뉴욕 여성의 술’이라는 이미지가 코스모폴리탄에 씌워졌고, 너도나도 이 술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절정의 인기를 누릴 당시엔 뉴욕의 바에서는 코스모폴리탄을 마시는 여자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코스모폴리탄은 보드카 베이스의 분홍빛 칵테일이다. ‘세계인’, ‘국제인’, ‘범세계주의자’ 등의 의미를 지닌 이 술은 그 이름부터 도회적이다. 분홍 빛깔에 과일향이 가득한 칵테일. 그럼에도 얕볼 수 없는 20도를 웃도는 도수. 매력적인 외관 아래 강한 ‘한 방’이 숨어있다. 『섹스 앤 더 시티』 속 세련되고 자주적인 인물들을 쏙 빼닮았다.


코스모폴리탄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토비 츠키니라는 바텐더가 처음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다양한 칵테일을 만들어보던 츠키니는 샌프란시스코 게이바의 친구가 만드는 칵테일에 대해 듣게 됐다. 코스모폴리탄의 원형이 되는 그 칵테일에는 라임주스, 석류시럽이 들어갔다. 츠키니의 말을 인용하자면 ‘예쁘지만 맛이 역겨웠다’고. 츠키니는 이 술을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그는 분홍 빛깔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크랜베리 주스를 넣었고, 거기에 라임주스, 코엥트로*, 앱솔루트시트론**를 섞었다. 시음해본 직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직원들이 몇몇 손님에게 이 술을 소개하며 코스모폴리탄은 맨해튼을 강타했다.


국제 바텐더 연합의 코스모폴리탄 공식 레시피는 츠키니의 것을 그대로 따른다. 우선 크랜베리 주스 30ml, 라임 주스 15ml, 코앵트로 15ml, 그리고 앱솔루트시트론 40ml를 얼음을 가득 채운 쉐이커에 넣고 강하게 쉐이킹 한다. 그런 다음 얼음 잔해를 걸러내고 시원한 칵테일 글라스에 따라낸다. 마지막으로 라임이나 레몬슬라이스로 장식하면 지구 어디에서도 뉴욕을 맛볼 수 있다.


기자는 평소 단골집인 신촌의 ‘Thinking Inside the Box’를 방문했다. 코스모폴리탄은 언제 먹어도 익숙한 매력이 있다. 그 맛이 아주 생경하지는 않다. 흔히 접해본 과일 주스 맛이랄까. 보드카의 깔끔한 강렬함과 퍽 잘 어울리는 맛이다. 한 모금 넘기면 혀에는 크랜베리와 라임의 새콤달콤함이, 코에는 보드카의 알콜 향이 남아있다. 도수가 제법 되는 편이지만, 과일의 달콤함이 잘 섞인 덕에 끝까지 산뜻하게 즐길 수 있다. 츠키니를 반하게 한 비주얼은 금상첨화다. 분홍빛과 다홍빛 사이의 오묘하고 매력적인 색감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영화판 『섹스 앤 더 시티』 막바지에, 네 명의 친구들은 미래를 기약하며 코스모폴리탄을 마신다. 미란다가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끊었지?”라고 묻자 캐리가 대답한다.

 

“모두가 마시기 시작했으니까”

 

『섹스 앤 더 시티』가 몰고 온 코스모폴리탄 열풍에 대한 나름의 유머였을 것이다, 보통의 시청자들에게 극 중 인물들이 휘감고 다니는 옷과 가방, 구두는 그저 환상으로 남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코스모폴리탄만은 누구든 시도해볼만한 대상이었다. 사람들이 술 한 잔 가격에 산 건 단순히 술 한 잔이 아닌, 환상이었던 것이다.

 

*코엥트로 : 오렌지향이 나는 순한 리큐어

**앱솔루트시트론 : 레몬향이 나는 보드카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사진 하수민 기자
charming_so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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