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외면인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인가

▶▶ 우리대학교 각 건물 입구에는 출입시간 관련 공지가 게시돼있다.

지난 9월부터 우리대학교 대부분의 건물에 출입시간이 생겼다.* 아침 7시~밤 10시 30분은 자율 출입시간이며, 이외 시간은 출입이 통제된다. 하지만 많은 경비노동자들은 이를 근무시간 변경을 위한 학교 측의 움직임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 측 “근무시간 감축하려는 의도”
학교본부 “근무시간 변경과 무관”

 

학교 측의 경비노동자 근무체계 일방적 변경 시도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아래 노조) 소속 경비노동자가 팸플릿 업체에서 인쇄된 ‘경비 근무시간 변경 안내문’을 발견했다. 노조는 학교 측이 경비노동자 근무체계를 일방적으로 변경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노조가 주관한 기자회견이 진행되기도 했다. 결국 해당 안내문은 학교에 게시되지 않았다. 당시 총무처는 해당 안내문은 시안에 불과하다고 해명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주 52시간 준수를 위해 근무시간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0호 ‘경비노동자 근무체계 일방적 변경 시도 의혹’>

지난 9월 14일 이후 각 건물마다 ‘출입시간 안내문’이 붙으면서 의혹은 다시 불거졌다. 노조 최다혜 조직부장은 “이전과 말만 바뀐 안내문을 통해 근무시간 변경을 강행하려는 시도라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건물 출입시간 설정이 경비 근무체계와 무관한 학교의 자체적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총무처 총무팀 박상욱 팀장은 “여전히 밤에도 건물 내에 경비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며 “학교는 근무체계 변경에 관여하지 않고 단지 용역업체에 주 52시간 준수를 요구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근무체계 변경 불가피, 
대화는 제자리걸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라 경비노동자의 근로시간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됐으나, 해당 논의는 고착 상태다. 원래 경비직은 감시·단속적 근로자(아래 감단근로자)로 분류돼 주 52시간 예외 적용 직종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대학교 경비노동자 대다수는 근로계약서 미작성을 이유로 감단근로자 승인을 받지 못해 주 52시간 근무제에 영향을 받는다. <관련기사 1816호, 3면 ‘경비노동자 다수 근로계약서 미작성… 「근로기준법」 위반’>

이에 지난 9월 6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의 제안으로 원청인 우리대학교와 용역업체, 노조의 면담 및 교섭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그러나 합의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노조 측은 “교섭을 통해 근무체계를 결정하자는 내용의 합의서 작성을 학교 측에 요구했다”며 “하지만 용역회사와 학교 측이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에 박 팀장은 “노조가 요구한 합의서 작성은 곧 직접고용의 형태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양측의 대화는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대학교 경비노동자의 근무형태는 맞교대 24시간 근무로,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24시간 근무한 뒤 다른 경비노동자와 교대하는 방식이다. 만약 주 52시간 규정에 맞춰 근무체계가 변경될 시, 아침 7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근무하고 하루 쉬는 형태가 될 공산이 크다. 근무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은 월 30~40만 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경비원 A씨는 “현재 230만 원 정도 받고 있는데 여기서 더 줄게 되면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며 “밤샘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을 우려하는 사람이 더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대학가에 불어온 무인경비 바람
경비인력 완벽히 대체 가능한가

 

학교 측은 현재 경비인력으로 나가는 비용이 이중지출이라는 입장이다. 총무처에 따르면, 우리대학교는 지난 2015년부터 완전한 무인경비 설비를 구비해놓은 상황이며 KT 텔레캅과의 계약으로 이를 운영하고 있다. KT 텔레캅 황보훈석 실장은 “현재 연세대의 무인경비 설비는 유인경비를 완벽히 대체하고도 남을 수준”이라며 “직원들이 중앙도서관 지하 1층 상황실에 24시간 대기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기준 우리대학교 경비인력은 126명이다. 박 팀장은 “경비 인력이 타대학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편”이라며 “유인경비 대신 이미 비용을 들여 설치한 무인경비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강조했다. 총무처는 경비인력 구조조정 계획은 없으나 퇴임 인원을 추가 채용하지 않는 자연감축 방식으로 경비인력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한편,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안인 만큼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학교본부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연서명을 받고 있다. 문과대 학생회 <QRIOUS> 또한 이번 사안과 관련해 입장문을 내며 별도의 학생 연서명을 진행 중이다. 문과대 학생회장 공필규(국문·15)씨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는 시점에서 지금처럼 노동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일방적인 통보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학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공식적 회의체에서 이번 사안을 포함한 장기적인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비원 B씨 역시 “주 52시간의 취지도 좋고, 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의견 수렴 없이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무인경비시스템의 기존 경비인력을 대체를 놓고 학생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우리대학교 재학생 C씨는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이 아니라면 야간에는 무인경비시스템으로 충분할 것 같다”며 “오히려 무인경비가 경비원보다 보안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신민철(정외·12)씨는 “무인경비시스템 설비의 주요 목적은 사후조치를 위한 것으로 신속한 초동대처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야간치안에서 경비인력은 필수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경비인력 감축 및 무인경비화는 우리대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수의 대학들도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는 동시에 경비인력을 감축하는 실정이다.  건국대의 경우 무인경비시스템이 도입된 28개의 건물을 33명의 경비인력이 관리하고 있다. 아주대는 무인경비시스템이 갖춰진 12개의 건물을 18명이 관리하며, 3개의 건물을 전면 무인화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정책위원은 “무인경비가 확대되고 유인경비가 감축되는 방향은 당연하다”며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자연감축으로 인원을 줄이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2년 연속 10% 이상 오르면서 사회 곳곳에서 무인시스템 도입이 이뤄졌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금전적 실익 이상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대호 교수(문과대·서양고대철학)는 “기독교 정신을 앞세운 우리대학교가 을(乙)의 처지에 있는 분들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무엇을 목적으로 교육을 하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예외 건물: 공학원, 중앙도서관, 학생회관. 

글 노지운 기자
bodo_erase@yonsei.ac.kr
이승정 기자
bodo_gongju@yonsei.ac.kr

사진 하광민 기자
pangm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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