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은 최소한의 인권

유정수 (역사문화·17)

닭이 공감 능력을 갖추고 돼지가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할 수 있단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아래 AI)는 19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처음 보고됐고 우리나라에선 지난 2003년 최초 발생했다. 매년 뉴스 아나운서의 입으로 전해지는 ‘AI로 인한 가금류 살처분’ 소식은 더는 놀랄 일이 아니다. 가장 최근만 하더라도 우린 가금류 3천500만 마리를 생매장했다. 구덩이를 파고 닭과 오리를 집어넣는다. 흙으로 덮어도 그 틈새로 피가 흘러나온다. 소독약을 뿌리고 안내판을 심는다. 불과 2년밖에 안 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AI와 구제역으로 살처분 당한 가금류는 7천896만 마리에 육박하고 소, 돼지 또한 390만 마리에 이른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닭과 오리, 소와 돼지는 생매장될 것이다.

매년 언론은 뻔한 보도를 한다. ‘공장식 축산’, ‘밀집·강제 사육’이란 헤드라인으로 신문을 장식한다. 밀폐된 공간에 적정 수준 이상의 동물을 기르니 AI든 구제역이든 버틸 수가 없단 뜻이다. 매년 같은 내용의 기사가 나오고, 매년 같은 방식으로 동물들이 죽는다.

헌법 혹은 동물보호법에 동물권을 명시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동물을 인간에게 속해 있는 가축이 아니라 동등한, 지각력 있는 대상으로 보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물론 동물권의 정의 여부, 보호 형태는 국가마다 제각각 다르지만, 필자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독일을 꼽는다. 독일 기본법(Basic law, 20a)은 ‘국가는 또한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헌법 범위 내에서 입법에 의하고 법률과 법의 기준에 따라 집행권과 사법권에 의하여 자연적 생활 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독일이 헌법적 틀 안에서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를 진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2016년 독일에서 ‘수간 행위를 금지한 독일 동물보호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 독일 헌법재판소는 ‘부자연스러운 성적인 공격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원고들이 거론한 성행위의 자기 결정 권한에 우선’한다며 위헌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국민이 안전한 고기를 먹을 권리와 동물을 보호해야 할 의무 중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지 표류 중인 대한민국과 명백히 대비되는 순간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다 살처분 국가, 대규모 개 농장이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유일한 국가다.

물론 우리나라도 동물권 보호를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 ‘공장식 축산에 대한 위헌 소송’이 대표적이다. 법으로 규제해 이러한 행태를 막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헌법재판소는 해당 소송을 기각했다. ‘축산법 등의 내용이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과 관련된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현행 축산 관련 법령이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과 관련된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시민들이 고기를 섭취할 때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역할을 축산법이 하고 있으니, 닭이 A4용지보다도 작은 케이지에서 알을 낳든 돼지끼리 살을 비비며 고통스럽든 ‘법적으론’ 상관없단 뜻이다. 닭은 날개 한 번 활짝 펴지 못한 채 알 낳는 기계로 생을 마감하고, 돼지는 컴컴한 축사에서 제 몸 하나 마음껏 뒹굴기 어렵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상관없단 뜻이다.

하지만 동물권 보호가 세계적 흐름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변화의 자세가 요구된다. 현행 헌법은 1948년 제정돼 9번 개정됐다. 민주항쟁의 결과물로서 우리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 및 통치구조에 관한 조문들을 쟁취했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포함해야 한다. 동물 학대 사건을 보고 분노하는 시민과 네티즌, 강력한 처벌 규정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와 이전과 비교해 훨씬 증가한 ‘반려동물-가족’들을 보며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할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이 가능함을 느낀다.

인간과 동물은 호혜적 관계다. 서로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동물에게 그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동물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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