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주변이 없었다. 남들과 어울리기보단 혼자만의 세계를 즐겼다. 스스로 ‘외톨박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게 취미였다. 자유로운 공상은 덤이었다. 삼십 년 전 우리대학교 교정을 거닐었을 이욱정(영문·84) 동문이다.

‘요리하는 PD’로 자리매김한 그는 어느덧 TV에 나오는 수다쟁이가 됐다. 수줍음 많은 대학생 이욱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상수동의 자그마한 요리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르네상스의 시작
무궁무진한 경험을 쌓다

 


이 PD는 대학 시절을 ‘르네상스’라고 표현했다. 그는 경험이 성취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대학 생활 내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는 데 몰두한 이유다. 그는 학점 관리보다 학술 심포지엄이나 대외활동에 더 열중했다. 학교에서는 정치·외교·경제·과학 등 전공 외의 수업을 가리지 않고 청강했다. 연극 무대에도 올랐고, 시위현장을 찾아가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러지 않는 날엔 탑처럼 쌓아 올린 책과 잡지 틈에 파묻혀 살았다.

그는 분야를 막론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고 들었다. 일정한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려는 그만의 시도였다. 이 특유의 ‘잡식성’ 배움이 지금의 이욱정을 만든 원동력이다. 그는 “지식은 곧 호기심”이라며 “호기심의 영역을 무한대로 넓히기 위해선 지식에 대해 잡식성일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PD가 ‘잡식성’이었던 분야는 하나 더 있었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맛있는 음식이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찾아다녔다. 1980년대 시대상을 고려할 때 다소 특이한 취미였다. 당시 분위기는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금기시했다. 그는 고육지책으로 ‘조용히 숨어서 먹는’ 방법을 택했다. 특별한 날엔 신촌에서 냉동 삼겹살을 먹었고, 이화여대 앞 골목에선 분식이나 디저트를 즐겼다. 후일 그가 성공적인 푸드멘터리* PD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두 번째 르네상스
맛과 철학을 전하는 PD가 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영상 촬영'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었다. 주변에서 ‘장례식 영상도 재밌게 찍더라’라는 칭찬까지 할 만큼 실력도 상당했다. 그는 “그땐 방송국에 입사하거나 박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히며 “방송국에 먼저 합격한 바람에 여기까지 왔다”고 웃음 지었다.

그렇게 이욱정에게 두 번째 르네상스가 찾아왔다. KBS 입사 후, 그는 본인만의 철학을 쌓는 데 집중했다. 폭넓은 지식과 식탐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이 PD는 이 ‘재료’들을 하나로 묶어내 프로그램을 요리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이 PD의 대표작 「누들로드」였다.

「누들로드」는 기존의 푸드멘터리를 뛰어넘었다. 음식을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학적 세계관을 녹여낸 덕이다. 이 PD는 「누들로드」에서 인류의 음식문화를 객관적 시점으로 바라봤다. 「요리인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음식의 우수성이 아니라 세계 각지 문화의 ‘다름’을 표현했다.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인간과 문화, 나아가 인류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담아냈다. 이욱정의 영상만이 가지는 풍미다. 그는 “최대한 자민족중심주의를 탈피해 비교문화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며 “그게 내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고 싶은 철학이자 차별성”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각지의 음식을 담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촬영 대부분이 해외에서 진행돼 일 년 중 300일 이상을 타지에서 보낸 적도 있다. 새로운 촬영지를 찾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촬영이 끝나는 순간 전기 퓨즈가 탁 끊기듯 주저앉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푸드멘터리를 제작하는 데서 나오는 원초적인 즐거움 때문이다. 이 PD는 “본능과 지적 즐거움이 시너지를 낸다”며 “일이 재밌어서 힘들어도 촬영에 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메가폰을 내려놓고 
칼과 도마를 잡다

 

「누들로드」는 대박을 터뜨렸다. 시청률 10%대를 기록하며 ‘다큐멘터리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 2009년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대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이 PD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정점에 오른 직후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휴직계를 내고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런던캠퍼스로 유학을 떠났다.

PD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명성을 얻었지만 늘 2% 부족함을 느낀 그였다. 수많은 음식을 촬영하고 관련 자료를 공부했지만, 직접 만들 수 있는 요리는 한 가지도 없었다. 요리를 직접 해보고 본인이 프로그램 속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었다. 최고의 푸드멘터리를 위해선 PD 이욱정뿐 아니라 요리사 이욱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메가폰 대신 칼과 도마를 잡았다. 이 PD는 “어떤 분야든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것은 지적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는 한 마디로 자신의 유학 계기를 설명했다.

유학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 새벽 5시 40분에 기계적으로 일어났다. 수험생 시절에도 아침 7시 전에 일어나본 적이 없었지만, 그곳은 런던이었다. 르 코르동 블뢰는 세 번 이상 지각하면 퇴학 위기에 처하는 곳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일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그가 요리 초보라는 사실이었다. 프로그램 기획엔 익숙했지만 식자재 손질엔 미숙했다. 모든 수업은 그의 실력을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됐다.

수업 첫날, 2시간 30분 만에 요리 한 접시를 완성하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능숙하게 칼을 갈고 맛을 내는 수강생들 틈에서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의 손아귀는 로스트비프를 요리하다가 ‘미디엄 레어’로 익어버렸고, 정성껏 만든 무스케이크는 쓰나미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 PD는 “굼떴고, 매일같이 실수했으며, 무엇보다 많이 혼났다”며 “요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런던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고 빙그레 웃었다.

전쟁터 같은 주방에서 스트레스가 상당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 PD는 “나는 손재주도 없고 경험도 없었다”며 “요리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직시했다. 좌절하기보다는 더 연습했고, 조금씩 발전해나갔다. 때때로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시간을 내 영상을 찍으며 이겨냈다. 이 PD는 “유명 셰프가 목표였다면 좌절했겠지만, 좋은 요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PD가 꿈이었다”며 “나만의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과 낙천적 성격 덕에 버텼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 PD의 자신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국내 최초로 ‘르 코르동 블뢰를 졸업한 PD’가 됐다. 장장 500일이 넘는 유학 생활의 끝이었다.

 

‘레스토랑에서는 셰프가 차려준 음식을 먹지만
삶에서는 나 자신이 셰프가 된다’

 

이 PD의 삶에 목표가 있다면 남들과 다른 ‘인생의 레시피’를 찾는 것이다. 그는 인생을 코스 요리에 비유했다. 주어진 삶은 한정적이고 그 안에 요리는 완성돼야 한다. 시간 안에 만들어낸 요리로 사람의 일생은 평가된다. 많은 이들은 보편적인 레시피를 따른다. 흔하긴 해도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 PD는 “대학도, 직업도, 결혼도, 노후도 남들의 레시피대로 똑같은 접시에 똑같은 음식을 만들다 끝난다”며 “내 인생은 나만의 레시피에 따라 요리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결과물을 빨리 선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힘겨워하지 않았다. 다만 매 순간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좇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남들이 얼마짜리 옷을 입고, 연봉이 얼마인지 등에 무관심했다. 서로 간의 비교는 무의미했다. 오히려 상처만 남았다. 타인과의 비교가 일상적인 오늘날,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한다. 그는 “비교로 인한 상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무관심”이라며 “나와 비교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는 무관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무작정 주변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듬이처럼 ‘남이 얼마나 행복한지’에만 곤두서 있는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하자는 뜻이다. 그는 본인이 언제 행복한지 잘 알았다. 일찍이 자기애의 소중함을 깨달은 덕택이다. 그는 “자기애는 나쁜 게 아니다”며 “자신을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이욱정은 그렇게 일생을 살아왔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앞치마를 두른 이 PD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PD이자 셰프였다. 어떤 요리라도 자신 있게 만들어 낼 것 같았다. 대학생을 위한 요리 추천을 부탁했다. 이 PD는 장난스럽게 “‘허무’할 때 ‘후무스’*를 먹는다”며 “건강에도 좋고 부드러워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맛”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요리를 공부하고 먹어본 그가 망설임 없이 추천한 요리다. 분명 허무한 마음을 채워줄 것 같았다. 


오늘, 그의 푸드멘터리와 함께 후무스를 먹어보면 어떨까. 바쁜 일상에 뜻밖의 큰 위로가 찾아올지 모른다.

 

 

 

*푸드멘터리: 푸드(food)와 다큐멘터리(documentary)의 합성어로 요리를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장르다.
**후무스: 이집트와 중근동 지역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병아리콩을 으깨 만든다.

 

 


 

글 이찬주 기자
zzanjoo@yonsei.ac.kr
김민정 기자
whitedwarf@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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