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염 일수가 31.2일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국무총리가 ‘공기업 및 공공 부분 야외 노동자 근무시간 단축’을 명령했고, 경북·전북·전남 우정본부 등에선 택배 방문 접수가 잠정 중단됐다. 폭염 대비 집배원 업무 경감 차원에서 내려진 긴급조치였다.
#2. 지난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라돈 수거 명령이 떨어졌다. 집배원들은 이틀간 매트리스 8만 개를 수거했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짧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집배원의 안전이었다. 마스크와 장갑만을 착용한 채 방사성 원소가 포함된 침대를 운송하라는 지시는 집배원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집배원들에게 올여름은 유난히도 길었다. 기록적인 폭염은 안 그래도 많은 짐을 한층 더했다. 우편물뿐 아니라 라돈까지 운송하기도 했다. 폭염과 불안감 속에서 고된 업무를 해야 했던 이들을 직접 만나봤다. 

 

폭염부터 라돈까지,
말 많고 탈 많던 여름

 

집배원은 업무 시간 대부분을 야외에서 보낸다. 이들은 이륜차 위에서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맞는다. 여기에 엔진 열까지 더해지면, 텁텁한 공기 속에서 숨조차 마음껏 쉬기 어렵다.

폭염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우정본부는 집배원 안전 관리에 나섰다. 우정본부 집배환경개선과 강현숙씨는 “폭염 대책으로 수분 섭취를 권장하고 냉수 및 얼음 스카프 등을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정부가 권고한 지시 사항을 준수했다”고 덧붙였지만, 정작 집배원들은 우정본부의 대처론 충분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서대문 우체국 집배원 A씨는 “스카프나 토시를 해봤자 5분이면 말라 금방 열기가 올라온다”며 “폭염을 극복하라고 공급되는 물품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집배원이 폭염을 피하는 방법은 지하주차장처럼 서늘한 곳에서 잠시 쉬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우편 배송 업무가 밀리기 때문이다. 서대문 우체국 집배원 B씨는 “내가 쉬면 결국 주위 팀원들이 더 일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폭염 속 고된 업무에 ‘라돈 침대 운송’까지 더해졌다. 지난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요청으로 우정본부가 방사성 물질 ‘라돈’이 포함된 침대 수거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틀간 8만 개의 매트리스를 수거한다는 것 자체도 고강도 업무였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수거하는 집배원들에 대한 안전 절차였다. 

라돈 침대 운송 담당 집배원에게 일반용 마스크와 장갑만 지급한 것이 발단이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 검사 후 비닐 포장을 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직접 침대를 옮기는 집배원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라돈에 노출되면 바로 몸에 이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B씨는 “검사를 했다지만 강한 불안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집배원들의 불안이 사실무근은 아니다. 1급 발암물질로 알려진 라돈은 공기 중 미세먼지 등에 달라붙어 체내로 들어온다. 침대를 비닐로 포장했다곤 하지만 비닐이 찢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공기 중에 라돈이 유출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하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임병록 안전소통담당관은 “실제로 라돈 침대를 운송하는 데 마스크도 필요하지 않다”며 “장갑마저도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착용한 것일 뿐 위험성은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라돈의 경우 아주 장기간 노출됐을 경우에만 폐암의 원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초소형전기차’ 도입?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우정본부는 오는 12월부터 2020년까지 ‘초소형전기차 1만 대 전면 도입’을 발표했다. 현재 지역별 우체국에서 수요를 조사한 후 시범 운영 중이다. 우정본부 우체국관리과 선우환 과장은 “기존 이륜차와 달리 폭염 등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며 “안전사고 위험도 적고 친환경적이어서 정부 방침에도 부합한다”고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해당 결정이 집배원의 업무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여론도 있지만 실제로 일하는 집배원들은 전기차 도입이 반갑지만은 않다. 이들은 ▲골목길 통행 어려움 ▲주정차 단속 위험 ▲충전 문제 등을 꼽으며 전기차 도입 실효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선 이륜차는 좁은 골목길 통행이 편하지만, 전기차는 그렇지 않다. A씨는 “창천동처럼 굽이진 동네는 전기차가 무용지물”이라며 “집배원은 전기차 도입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선씨는 “전기차 시범 운영과 함께 집배원 선호도를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집배원 상당수가 전기차 도입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아파트 단지를 제외하면 주차도 쉽지 않다. 집배원들이 주정차 단속 걱정까지 해야 한다. 전기차는 골목길에 들어가지 못해 인근에 주정차해야 하는데, 이때 단속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잘못 주차했다가 단속에 걸릴 수도 있다”며 “아무리 초소형 차량이라 해도 주차를 하는 것은 눈치가 보인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전기차는 충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국내 전기차 충전소는 평균 100km당 2개씩 있다. 가스·정유 주유소에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숫자다. 이런 상황에서 초소형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실효성 없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집배원 B씨는 “충전 1회당 주행거리가 100km 정도라는데, 혹시라도 중간에 방전되면 충전도 못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더위와 불안감으로 인해 유달리 고됐던 집배원들이다. 업무 환경 개선책으로 제시한 전기차 도입 계획도 이들을 마냥 웃게 할 수는 없다. 내년 이맘때, 집배원들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글 채윤영 기자 
hae_reporter@yonsei.ac.kr

사진 하수민 기자 
charming_soo@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