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모르는 정책… 장애인 도우미 뿔났다

지난 7월 1일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4시간 근로 시 30분 이상, 8시간 근로 시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이 근로시간 도중 근로자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중증장애인 도우미에게 휴식이란 말은 사치일 뿐이다. 휴게시간은커녕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장애인 도우미의 현실이다.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장애인 도우미 휴게시간

 

장애인 도우미의 휴식을 어렵게 하는 요소는 ▲도우미에 대한 높은 의존도 ▲만성적인 도우미 인력 부족 등이다. 

도우미에 대한 중증장애인의 의존도는 상상 이상이다. 도우미가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금세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김지원(59)씨는 활동지원사*가 보이지 않을 때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 없다. 김씨는 “활동지원사 없이는 물도 못 마시고 대소변도 가릴 수 없다”고 어렵게 말했다. 김씨의 활동지원사 윤정희(56)씨는 “휠체어에 혼자 앉아있으면 엉덩이가 앞으로 밀려서 굴러 떨어질 위험도 있다”며 “항상 곁에 붙어있어야 한다”고 증언했다. 물잔에 꽂는 빨대까지 도우미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설령 휴게시간이 주어져도 도우미가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리 없다.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고미숙 조직국장은 “업무 도중에 담당 장애인만 놔두고 30분 동안 혼자 쉴 순 없는 노릇”이라며 “정부가 현장의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꼬집었다.

고질적인 도우미 부족도 문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2월의 장애인활동지원사업 이용자는 6만 6천534명이었다. 그러나 실제 제공 인력은 5만 8천102명에 불과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쉼터요양원’의 경우, 원칙대로라면 소속 사회복지사** 1명이 장애인 1명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복지사 1명이 장애인 7명 정도를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 도우미에게 휴식은 환상에 불과하다. 쉼터요양원 김대석 사무국장은 “사회복지시설들은 대체로 도우미 인력이 부족하지만 예산 문제로 새로운 인력을 더 고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시설 내 사회복지사들이 밥도 들이키다시피 하며 분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높은 근무 강도가 또다시 도우미 인력난을 심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더욱 치명적이다. 

 

‘휴게시간 일괄 적용’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탁상행정에 뿔난 도우미들

 

도우미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대체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설 관계자들은 정부의 예산 지원이 불충분해 인력을 충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쉼터요양원과 같은 사회복지법인은 전체 재원을 중앙정부 50%와 지자체 50%의 지원으로 충당하는 구조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가 100이 필요하면 정부는 70만 지원해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며 “지원 확대가 선행돼야 인력 충원과 법 준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이환 주무관은 “예산안은 기획재정부에서 총괄하기 때문에 현장의 상황을 보고해도 예산 지원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저임금 문제 역시 장애인 도우미가 맞닥뜨린 문제 중 하나다. 도우미가 법정 근로시간을 넘겨 추가 근무를 해도 현행법상 임금 지급이 불가능하다. 추가 근무 시간 중 연장근로수당 지급이 가능한 한도는 월 40시간으로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신동건(26)씨는 “도우미들은 한 달 평균 80시간을 연장근로로 일한다”며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사실상 자원봉사 형식으로 일해온 셈”이라고 설명했다. 

연장수당뿐이 아니다. 도우미들은 휴게시간 동안 쉬지 못하고 일하지만, 임금을 받을 수는 없다.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단말기에는 1시간 동안 휴게시간을 가진 것처럼 기록하기 때문이다. 윤씨는 “사무실도 현장의 상황을 알지만 명목상 법을 지키려고 단말기에 휴게시간을 찍으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씨는 “안 그래도 적은 임금을 받는데, 정부가 1시간 치 임금을 깎아먹으려고 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추가대책 마련, 정부는 손 놨다

 

이에 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사 휴게시간 세부 지원 방안’을 배포했다. 해당 방안은 ▲휴게시간 자율적 준수 지원 ▲고위험 중증장애인 대상 별도지원책 마련 등이 골자다.

그런데도 현장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활동지원사들은 지원의 실체가 모호할뿐더러 휴게시간의 ‘자율적’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율적 준수는 장애인 설득이 수반돼야 하는데, 이는 장애인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정부의 꼼수라는 주장이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가 법을 개정해놓고 노동자나 장애인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불합리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정부는 완고한 입장이다. 법 개정의 취지인 근로자 휴게권 보장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오경희 행정사무관은 “기본적인 법 개정 취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올해까지는 현장 상황을 살펴보고 차차 정책을 보완해나가겠다”고 전했다.

고위험 중증장애인 지원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크다. 현재 정부가 지정한 ‘고위험군’ 장애 구분은 도우미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지 않은 장애인 중에서도 늘 도우미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고 조직국장은 “정부는 중증장애인의 상황만 고려하는데, 발달장애인을 혼자 뒀다가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다”며 “고위험군만 지원하면 된다는 정부의 방침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 행정사무관은 “고위험군 이외의 발달장애인 등도 지원해줄 필요는 있다”면서도 “예산이 한정돼있기 때문에 정책의 범위를 확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권리 보장’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부는 탁상행정을 멈추고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활동지원사: 주로 재택치료를 받는 장애인의 집으로 파견돼서 일한다. 시급제로 임금이 지급된다.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일하는 도우미. 월급제로 임금이 지급된다.


글 이찬주 기자 
zzanjoo@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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