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씨는 전공서적 대출을 위해 도서관에 방문했다. 그러나 대기자만 7명이란 소식을 접했다. 시험기간이라 경쟁이 치열한 것도 있겠지만, 왜 학교가 단 한 권의 서적만을 비치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2. 실험 수업에 참여한 B씨는 실험용 도구들을 확인했다. 산성용액을 이용하는 실험인 만큼 안전에 유의해야 했지만, 일회용 스포이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위는 복수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A와 B씨가 겪은 일은 ‘교육여건지출비’와 밀접하게 관련있다. 교육여건지출비는 기계구매입비·도서구입비·실험실습비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대학 교육에 쓰이는 비용의 일종이다. 

 

‘실험설비서 물새면 테이프 붙여’
나아질 기미 없는 교육여건

 

대학가에서 교육여건지출비 감소는 공통된 현상이다. 전국 147개 사립대학의 연평균 교육여건지출비는 지난 2011년 8천689억 5천300만 원에서 2015년 7천78억 3천300만 원으로 감소했다. 5년 사이 18.5%가 줄어든 셈이다. 특히 우리대학교의 교육여건지출비는 34.2% 감소해, 동기간 17.3%를 기록한 고려대 등 타 대학에 비해 큰 낙폭을 보였다.

교육여건지출비 감소는 곧 대학 내 교육 환경 악화와 직결된다. 우리대학교 이공계 재학생 A씨는 “가열 실험에 사용되는 핫플레이트*가 파손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예 고장이나 작동하지 않는데도 새 설비로 교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서대 재학생 B씨는 “파손된 실험 설비는 테이프를 붙여 쓰는데, 실험 중 물이 다 샐 정도”라고 말했다. 실습 조교 5년차인 C씨는 “실습 도중 학부용 기기가 낙후돼 연구용 기기를 끌어와 사용한 적이 있다”며 “특히 재수강생이 많은 강의나 계절 학기 수업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교육여건지출비와 교육의 질은 비례할 수밖에 없다”며 “논란이 잦은 수강신청 서버 증설 등의 문제도 교육여건지출비와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원인은 만성 재정난?

 

대학 측은 수년째 등록금이 동결·인하되는 상황에서 교육여건지출비용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특히 사립대에서 두드러진다. 국·공립대는 인건비·관리비를 일부 보조받지만, 사립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국가장학금 지원액을 제외할 때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60%까지 올라간다. 우리대학교 기획처 이근호 예산팀장은 “지금보다 (교육여건지출비) 예산을 증액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한라대 관계자 D씨는 “신입생 정원 감축 문제까지 겹쳐 재정에 여유가 없다”며 “교육여건지출 감축을 지양하지만, 현실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사립대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들의 상황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당국과의 의견 조율 등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빠른 시간 내에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는 ‘대학이 잿밥에만 관심 있는 게 진짜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학이 교육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비용에 우선순위를 두고 예산을 책정한다는 것이다. 주요 근거는 대학이 그동안 지출한 ‘소모성 경비**’ 명세에 있다.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 대학들은 소모성 경비로 약 2천억 원을 지출했다. 같은 기간 지출한 교육여건지출비의 30% 수준이다. ‘등록금 동결’과 ‘재정 악화’를 이유로 교육여건지출비는 삭감했지만, 소모성 경비는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대학들의 주장에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 팀장은 “행사 하나가 진행될 때마다 초청비, 항공비 등 최소 1천만 원이 사용된다”며 “특히 지난 2015년에는 100주년 기념행사 때문에 비용을 많이 지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연구원은 “학교는 교육여건을 개선할 책임을 지고 있지만 많은 대학이 외적 이미지 제고에만 역점을 두고 정작 교육엔 소홀한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핫플레이트: 전기 및 가스를 사용해 실험용 액체를 가열하는 기기
**소모성 경비: 홍보비, 행사비, 업무추진비와 회의비를 합친 비용으로 학생들의 교육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항목들에 해당.

 

글 강현정 기자 
hyunzzang99@yonsei.ac.kr

사진 최능모 기자
phil413@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