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함께 조명된 검침원의 근무환경

올여름 평균기온은 섭씨 37도다. ‘가장 더운 여름’으로 꼽히는 지난 1994년보다도 더 뜨겁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온몸을 적신다. 도시가스 검침원들이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지난 2일도 그랬다. 그들은 왜 도시가스 검침기계가 아닌 마이크를 잡았을까. 현직 도시가스 검침원 세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뜨거운 땡볕, 끓어오르는 지열
쓰러지는 검침원들
 


검침원의 업무는 주로 가정집 등을 방문해 도시가스 계량기를 점검 및 검침하는 일이다. 검침원은 하루 평균 50세대 이상의 가정집을 일일이 방문한다. 간혹 버스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검침원 중 상당수가 도보로 이동한다. 4년째 검침원으로 근무 중인 A씨는 “매일 8시간을 땡볕 속에서 걸어 다닌다”며 “더위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면 맨바닥에 주저앉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정부도 이번 폭염을 사실상 ‘재난’으로 인정했다. 야외 업무가 잦은 검침원들로서는 신체적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회사는 검침원들에게 그늘 하나 마련해주지 않았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연구원은 “요즘 같은 날씨에 검침원들의 업무 환경은 용광로에서 일하는 고열노동자와 같은 수준”이라며 “햇빛에 지속해서 노출될 경우, 열로 인한 탈진이나 경련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시가스 계량기 대부분이 옥외에 있는 점 또한 고충이다.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냉방용품을 제공하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검침원 6년 차 B씨는 “올해 처음으로 회사에서 얼음팩, 얼음스카프 등 폭염 대비 용품을 지급했다”며 “하지만 (지급받은 용품이) 제 기능을 하는 시간은 딱 10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한 도시가스 용역업체는 폭염 대책으로 사무실에 얼음물을 비치했다. 해당 업체 검침원은 “얼음물을 받으려면 사무실까지 왕복 1시간 동안 뙤약볕을 걸어야 한다”며 “과연 폭염 관련 대책을 잘 마련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검침원에게 올여름은 끔찍하다. 업무량 과중에 폭염까지 더해진 이중고다. 노동전문지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지난 한 달 새 검침원 4명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현행법은 근로자 인정 여부에 따라 산재 신청이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검침원들은 용역업체 근로자다. 분명 산업재해 신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검침원들에게 산재 보장은 쉽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검침원 13년 차 C씨는 병원에서 온열 질환 진단을 받고 링거까지 맞았지만, 모두 자비로 부담했다. C씨는 “오히려 회사로부터 ‘쌓여있는 이력서 많다’, ‘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왜 당신만 그러느냐’ 등의 대답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원청과의 재계약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하청 측이 산재 신청을 꺼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폭염이 가셔도 검침원의 업무 환경은 나아지지 않는다. 도시가스 검침원 대부분은 간주노동자*로 분류된다. 원할 때 일하는 프리랜서 개념이 아니다. 검침원의 근무시간은 평일·주말, 낮·밤 구분이 없다. 모든 시간이 그들의 근무 시간이다. 하지만 업무용 전자 단말기에 찍히는 근무 시간은 계량기를 검침하는 2분 30초다. 그 외 이동 시간과 부재중 가정에 대한 재방문 요청 시간은 측정되지 않는다. B씨는 “검침을 위해 10번까지 재방문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검침에 성공한 1회 만이 근무로 인정된다”고 언급했다.

공휴일이나 주말의 추가 검침 업무는 근무 시간에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 A씨는 “회사는 못다 한 업무를 주말과 공휴일에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전했다. 이런 방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이 실질 업무 시간 중 반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혁신추진과 조병돈 주무관은 “사업주로선 검침원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며 “검침원과 사업주 사이에 객관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게 업무량뿐이므로 재방문이나 공휴일 업무를 추가 근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한편, 검침원들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집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관련기사 『TheY』 31호 12면 ‘오지 않은 그들의 봄을 기다리다>. 역으로 고객들도 마찬가지다. 검침원의 방문에 의심부터 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검침원들의 신분을 보장하던 유니폼 로고가 사라졌다. C씨는 “올해부터 유니폼과 가방에서 서울도시가스 로고가 사라졌다”며 “더 이상 회사명이 적힌 명함도 사용할 수 없다”고 전했다. C씨는 “고객들은 신원을 증명할 수도 없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도시가스 본사 관계자는 “검침원들은 위탁 업체 소속이기에 본사 로고를 쓸 수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신분 증명은 본사의 몫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용역업체는 “본사 측에 문의하라”고 말한다. 본사와 용역업체가 책임을 돌리는 사이 검침원의 업무만 더 어려워졌다.

 

인터뷰 막바지, C씨는 “검침원 대다수가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옆에 앉은 A, B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또다시 땡볕 아래 서야 한다. 업무 시간뿐 아니라 “투쟁”을 외치는 시위 현장에서도 구슬땀을 흘려야 한다.

 

 

*간주노동: 근로 장소 및 업무의 성질 등으로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울 때 사용. 노사 간 합의로 인정한 시간만큼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

 

 

 

 

글 강현정 기자
hyunzzang99@yonsei.ac.kr
김민정 기자
whitedwarf@yonsei.ac.kr

사진 최능모 기자
phil4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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