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낡은 구두를 기억한다. 국회와 지역구를 누비는 동안 닳아버린 구두를 그는 쉽사리 벗지 못했다. 고된 업무로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낡은 구두는 그가 짊어진 도덕성의 무게다. 정의와 형평을 부르짖으며 정치에 뛰어든 이들에게 요구되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그에게도 적용됐다. 일평생 빈자와 소외된 계층을 위해 일한 그가 끝끝내 낡은 구두를 벗지 못한 이유다.

그의 ‘어리석은 선택’은 강요된 일탈이었다. 현실에선 누구도 낡은 구두를 신은 채 정치를 할 수 없다. 합법적 방법으로 정치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 밝힌 4천만 원은 단체에서 모금한 후원성 자금이었다. 정치자금법상 단체 후원은 불가능하다. 개인은 1회당 최대 5백만 원만 후원금을 낼 수 있다. 그는 유서에서 “정식 후원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혹자는 ‘돈 받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이는 “장발장은 빵을 훔칠지 말지 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는 주장과 같다. 그에겐 그 돈이 장발장의 빵이었을지 모른다. 군소 정당의 지도자이자 지역구 의원으로서 발로 뛰어야 했다. 검소한 삶을 살고자 했던 의지와는 별개로, 정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최소한의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회는 그의 도덕성과 검소함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렇게 정치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진 않았다. 닳아 밑창이 떨어져 신기 어려울 때까지도 그는 낡은 구두를 벗을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은 비단 그뿐 아니라 정치에 뛰어든 모두가 처한 상황이다. 현행법상 국고보조금 절반은 교섭단체 구성 정당에 우선적으로 배분된다. 이후 군소 정당이 일부 가져간 다음, 잔여분을 의석수와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교섭단체를 구성할 능력을 갖춘 거대 정당에 유리한 방식이다. 군소 정당 정치인들이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선거 지원금을 제하면 정당이 직접 정치인에게 국고보조금을 지원할 수도 없다. 결국, 음성적 정치 자금 거래가 가능한 사람이나 재력가만이 정치판에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신념을 가진 이들이 낡은 구두를 벗지 않는 이상 정치를 이어나갈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제는 그들의 낡은 구두를 벗겨줄 때다. 정치인도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신념은 정치인에게 길을 제시하지만 여비는 주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오로지 신념으로만 살길 바라는 풍토는 그들을 정치로부터 몰아낼 뿐이다. 개인의 도덕성과 검소함 등과는 별개로, 정치 활동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제도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후원금의 한도와 지정권자 범위를 대폭 늘려야 한다. 교섭단체에 우선적으로 배분되는 국고보조금 비율을 줄이고 득표율에 비례하도록 바꿔야 한다.

끝내 장발장의 모습으로 떠난 그를 기린다. 그는 뜻을 함께하던 이들에게 자신과 별개로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 사회가 그와 같은 이들이 전진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길 소망한다.

 

 

 

글 강우량 기자
dnfid04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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