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문제와 자기모순

이남기 (철학·15)

‘낙태죄 폐지’ 합헌·위헌 논쟁은 수많은 이념, 믿음, 개인적 경험 등이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이며, 단순히 법리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를 생명권을 가진 권리주체(인간)로 볼 것인가라는 외재적 규정의 문제이기에, 모든 법률의 공리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의 논리 내부적으로는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외재적 규정의 객관적 기준을 찾기 위해, 자연과학에서 그 준거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과학 또한 보편적으로는 규정을 내려줄 수 없다. 인간이 수정 후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났을 때 감각이 생기고, 기관이 생긴다는 답을 자연과학이 내려줄 수는 있을지언정 이것이 곧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경계라는 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는 각자의 이념이 반영된 정의(正義)에 의해 정의(定義)내릴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주장과 주장, 믿음과 믿음이 대립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양측이 공통적으로 토대로 삼는 논리에서 해답을 찾아야할 것이다. 낙태죄 폐지 논쟁에서 그러한 공통된 토대는 바로 ‘스스로 목소리 내지 못하는 소외된 자들에 대한 고려’이다. 낙태죄 폐지론자들은 자의에 의해 임신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강압으로 인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그 소외된 자들로 보는 것이고, 낙태죄 유지론자들은 아직 태어나지 못해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없는 태아를 그 소외된 자들로 보는 것이다. 이 둘은 각기 인문적, 자연적 제약으로 인해 기성체계에 반영되지 못하는 경계 밖의 영역임이 명백하다. 이러한 영역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이들 또한 경계 안으로 포섭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쇄신하는 것이 건강한 인격과 사회의 징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필자가 여기서 낙태죄 폐지론과 유지론의 양시론을 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소외된 양 영역의 권리 주장이 서로 상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낙태죄 폐지 주장의 핵심은 태아를 생명으로, 인간으로 취급하지 말자는 소외와 배제의 논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 제도와 인식으로 인해 소외되고 매도됐던 여성들의 마땅한 권리의 복권과 경계 확장의 논리에 있다. 그렇기에 확정적으로 소외된 여성들의 권리 보장은 미정의 영역인 태아의 권리 주장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 주장을 위한 전 단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미정의 영역인 태아의 권리를 위해, 이미 소외됨이 드러나 있는 여성들의 권리를 희생해야한다는 제로섬 논리를 내재한 낙태죄 유지론은 자기모순적인 것이다. 따라서 낙태죄 유지 주장의 근거가 소외된 영역으로서의 태아에 대한 고려 때문이라면,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적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낙태죄 폐지’ 합헌을 무조건적이고 완결된 정의라 독단해서도 안 된다. 태아는 생명을 가진 권리주체라고 확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의미에서 미정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권리주체가 아니라고 확정할 수 없다는 적극적 의미에서 미정의 영역이기도 하다. 마치 기존의 체제에서 여성의 권리 주장이 그 언어를 갖지 못해 미정의 영역으로 취급됐던 것처럼 태아의 생명권 문제 또한 같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낙태죄가 위헌 판결을 받는다고 하여, 태아가 생명권을 지닌 권리주체임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낙태죄 위헌 판결은 오로지 여성을 자기결정권을 지닌 권리주체로서 인정함을 확정할 뿐, 태아의 생명권 문제는 여전히 미정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뿐이다. 따라서 낙태죄 유지론자가 낙태죄 폐지 합헌 판결을 태아가 생명권을 지닌 권리주체임을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낙태죄 폐지론 측에서도 ‘낙태죄 폐지’를 태아의 권리주체성에 대해 적극적 의미에서의 미정적임을 인정하는 한에서만 조건적으로 정당하다고 받아들여야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미정의 영역이 아직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한, 무조건적이고 완결된 정의는 있을 수 없고, 기존의 체제에서 소외된 영역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자기쇄신을 통해 경계를 끊임없이 유동시켜야한다. 이러한 한계 조건 내에서만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와 태아의 생명권 문제의 양립이 가능하며, ‘낙태죄 폐지’ 합헌 판결이 정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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