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한솔 이사를 만나다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숨진 故이한빛 PD를 통해 방송계 노동 실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방송계 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PD의 동생이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아래 한빛센터) 이사를 맡고 있는 이한솔 동문(문화인류‧10)을 만나 방송계 노동의 현주소를 들어봤다.

 

Q. 한빛센터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한빛센터는 방송·미디어 업계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일전에 tvN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가 사망했다. 당시 대책위원회에 몸담으며 방송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방송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빛센터를 설립했다.

 

Q. 현 방송계 내 전반적인 시스템에서 가장 문제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A. 현재 하청업체의 개별 노동자는 제작사와 직접적인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 이런 턴키 계약*이 가장 큰 문제다. 
방송 작가와 음향 및 소품 담당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에 속해 있다. 방송사는 제작사에, 제작사는 외주 업체에 하청을 맡기는 하청-재하청의 과정이 반복된다. 구조의 아랫부분으로 갈수록 업무는 고되고 처우는 열악하다. 말단 하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을 중의 을인 셈이다.


Q. 보조스텝‧보조작가 등과 같이 방송계에 위치한 비정규직 인력은 사측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오는 7월부터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된다고 말들이 많다. 
그러나 방송국 하청업체에 소속된 보조스텝‧보조작가 대다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이들은 대부분 프리랜서거나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는 애초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기에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비정규직은 법적으론 근로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방송계에선 근로계약 대신 도급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기에 비정규직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곧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위 ‘일하고 싶으면 버티라’는 열정 페이의 논리가 일상화되기도 한다. 포괄임금제도***는 이를 심화시킨다. 결과적으로 시급을 계산해봤을 때 3천800원 정도가 나오는 경우도 생긴다. 미리 급여를 정해놓기에 추가 업무가 생기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Q. 방송계 전반에 ‘갑질 문화’가 만연하다는 지적이 있다. 

A. PD가 촬영 결과물을 개인의 예술로 여기는 과정에서 방송계 특유의 갑질이 발생한다. 정해진 분량을 모두 찍었음에도 PD가 촬영을 종료할 의사가 없다면, 촬영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때 발생하는 추가 노동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정규직 PD를 제외한 노동자들은 PD의 예술적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한다. 방송계만의 ‘갑질’은 방송 제작을 위해 투입한 노동시간에 비해 월등한 퀄리티를 내야 하는 노동 구조에 기인한다. 
사전 제작 시스템의 부재 또한 방송계의 갑질 양태다. 우리나라 방송계에선 시청자들의 평가를 수시로 반영해 높은 시청률을 내기 위해 사전 제작 시스템을 지양한다. 그러나 사전 제작 시스템의 부재는 촬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대처하기 어렵게 한다. 결국 촬영이 예기치 않게 지연되거나 당겨지면 노동자들의 업무는 특정 기간에 비정상적으로 집중된다. 몰린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겐 초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한빛센터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A. 카메라가 담는 출연자 뿐 아니라, 카메라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도 존중받게 만들고 싶다. 드라마에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드라마 제작 현장 또한 노동자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짐이 돼선 안 된다. 방송계를 노동자 친화적 산업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턴키 계약: 건설업의 계약방식 중 하나로 하청 업체가 원청 업체를 위해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괄수주계약방식

**도급 계약: 당사자 가운데 한쪽이 어떤 일을 완성할 것을 약속하고, 상대편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성립하는 사업자 사이의 계약.

***포괄임금제도: 근로계약 체결 시 근로형태나 업무 성질상 법정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이 사전에 예정돼 있는 경우 매월 일정액의 제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

 

 

글 강현정 기자
hyunzzang99@yonsei.ac.kr
손지향 기자
chun_hyang@yonsei.ac.kr
이찬주 기자
zzanjoo@yonsei.ac.kr

사진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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