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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났던 꿈이 재가 되다일상적 부당대우와 임금차별 속에서 근로자 인정도 못받는 방송계 노동자의 현실
  • 강현정, 손지향, 이찬주 기자
  • 승인 2018.06.04 01:13
  • 호수 1814
  • 댓글 0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보조스텝으로 일하는 김방송(가명)씨의 일과는 예측 불가다. 찜질방에서 1~2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현장으로 가는 일이 잦다. 심지어 어떤 날엔 아침 7시에 퇴근을 하다가도 그 다음 날엔 같은 시각에 출근한다. 보조스텝은 방송PD가 정하는 ‘콜타임’*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눈은 퀭, 지갑은 텅

고(故) 이한빛 PD는 유서에서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2~3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부른다’며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을 떠밀었다’고 말했다.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제작기간 방송계 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18시간에 달했다. 하루 중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수면시간이 5시간도 채 안 되는 셈이다.

노동 착취 수준의 업무량은 방송계의 특이한 업무구조에서 기인한다. 방송 프로그램은 PD가 설정한 조건 하에 감독이 흡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동일 장면을 계속해서 촬영한 후에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보조스텝의 업무량은 급증하고 야간·추가근무는 일상화된다. 그러나 이런 추가 노동에 대해 수당은커녕 기본급조차 지급되지 않는다. 애초에 고정된 급여를 정하고 촬영을 시작하기에 각종 변수로 인한 근로 시간의 증가는 급여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외주제작 업체에서 막내작가로 근무했던 송수진(31)씨는 “6개월 제작 중 4개월 동안 ‘밤샘작업’을 했지만 200만 원을 받은 적도 있었다”며 “한 달에 30만 원 남짓한 돈을 받고 일한 셈”이라고 털어놨다. 방송통신위원회 편성평가정책과 전민아 사무관은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며 “관련 부처와 협업하고 의견을 나누며 개선 방안을 추진·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프리랜서
근로기준법 규제도 프리패스?

기존의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방송계 종사자는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방송업 특성상 업무강도 및 근무 시간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잇따른 방송계 노동자 사망사건을 계기로, 지난 5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됐다. 해당 개정안은 근로시간 단축과 연차 횟수 증가 등 근무 환경 개선이 골자다.

그러나 정작 방송계 노동 환경에 큰 변화는 없었다. 전체 방송계 노동자 중 정규직을 제외한 약 90%의 비정규직과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무 시간이 고정적이지 않고 상사로부터 업무를 평가받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김한별씨는 “프리랜서 이미지는 자유롭고 유동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노동법에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약 54시간에 달하지만 시급은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방송국에 고용되는 과정에서 구두계약 또는 표준도급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구두계약은 비정규직의 권리 보호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표준도급계약서는 사업자와 사업자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근로자성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B씨는 “방송업계 실태 조사 결과, 근로계약서가 상당수 작성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는 비정규직의 근로 환경이 정규직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고 전했다. 방송계 내에선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문화가 뿌리깊이 박혀 있다. 정부 측에서 해당 사안을 인지하면서도 개선에 난색을 표할 정도다.

오히려 해당 개정안이 비정규직을 더 양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개정안으로 정규직의 근무시간이 단축되면 기존의 노동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방송사가 비정규직을 양산해 업무를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규 전(前) MBC 드라마국장은 “근무시간의 감소는 곧 노동력 감소로 이어진다”며 “이 과정에서 방송국이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전 국장은 “근로기준법은 개정됐지만 방송국 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는 오히려 악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콜타임: 방송 업계 용어로 촬영 현장에 모이는 시간을 뜻함

글 강현정 기자
hyunzzang99@yonsei.ac.kr
손지향 기자
chun_hyang@yonsei.ac.kr
이찬주 기자
zzanjoo@yonsei.ac.kr

강현정, 손지향, 이찬주 기자  hyunzzang9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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