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작가 임택씨를 만나다

 

임택(59)씨의 휴대폰 번호 뒷자리는 휴대폰을 처음 가졌던 30대부터 지금까지 쭉 ‘5060’이다. 이는 5~60대에 여행 작가로 살겠다는 다짐이 담긴 번호다. 지금 임씨는 다짐대로 여행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 그리고 677일간의 세계여행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생 바랐던 세계 여행, 쉰 살에 시작하기까지

 

임씨는 김포공항 뒤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매일 저녁 공항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며 마을을 벗어나 먼 세계로 나가는 것을 그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여행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멀기만 한 얘기였다. 평범한 삶을 살던 임씨는 대학교 3학년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고 4학년 땐 첫 아이가 생겼다. 학생 가장에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임씨는 여행 작가의 꿈을 접고 일반 기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역마살’은 그에게 평범한 삶을 허하지 않았다. 임씨는 “한 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며 “22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타협점에 도달했다. 아내와 한가지 약속을 한 것이다. 쉰 살까지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고 그 후로는 여행 작가가 될 테니 믿어달라는 약속이었다.

직장을 그만둔 그는 해외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역대리업을 시작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한 무역대리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변변찮은 벌이에 빚이 점점 불어날 무렵 그는 파키스탄에서 우연히 바위소금*을 발견했다. 특유의 약효로 인기를 끈 바위소금은 임씨에게 좋은 수입원이 됐다. 결국 그는 빚을 다 갚고도 남는 매출을 올렸다.

아내와 약속했던 나이인 쉰 살이 되자마자 임씨는 무역대리업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막상 가족을 두고 긴 시간 홀로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임씨는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날 보고 아내가 편지를 하나 내밀었다”며 “‘일 년간의 휴가’라고 쓰여 있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편지에 용기를 얻은 임씨는 비로소 바라던 세계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을버스 ‘은수’와의 여정

 

여행을 계획하던 임씨는 어느 날 마을버스를 보며 불현듯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마을버스는 정해진 노선만 돌다가 10년이 지나면 폐차가 된다”며 “매일 같은 노선 안에서 뱅뱅 도는 버스가 그간의 내 삶 같았다.”고 말했다. 임씨는 폐차 직전의 마을버스를 구해 내부를 개조했다. 그리곤 ‘은수’라는 이름을 붙인 뒤 함께 세계여행을 떠났다.

임씨는 677일 동안 48개국, 147개의 도시를 여행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이 임씨의 길동무가 됐다. 그의 여행은 도전의 연속이자 절망과 기쁨의 끝없는 반복이었다. 과테말라에서 멕시코로 넘어가던 도중엔 버스가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억류됐다. 임씨는 무게가 나갈법한 물건을 모두 버스 아래로 내려봤지만 결국 버스의 무게는 기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과테말라로 되돌아가려던 임씨 일행에게 악재가 겹쳤다. ‘한 번 국경을 넘은 지 3개월 지난 외국 차는 재등록 없이 못 들어온다’는 과테말라 법이 문제였다. 결국, 이들은 국경과 국경 사이 조그만 마을에 고립됐다.

임씨 일행을 구한 것은 ‘파비’라는 현지 대학생과의 만남이었다. 임씨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파비의 집에 무려 23일간 묵었다”며 “내가 낮에 파비 가족 대신 타코를 파는 동안 그들은 관공서와 세관을 오가며 대책을 알아봐 줬다”고 회상했다. 결국 파비의 가족, 동네의 이장, 군인, 경찰, 그리고 세관원까지 모두가 힘을 모은 끝에 임씨 일행은 과테말라의 항구로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맺은 파비와의 소중한 인연을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임씨. 그는 “여행을 해보니 힘든 일과 기쁜 일은 항상 맞닿아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도전한다면 언제나 청년

 

여러 국가 중 특히나 이란을 방문하는 것은 임씨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경찰에 한 번 붙잡히면 모든 것을 빼앗긴다든지, 현지 사람들이 매우 불친절하다는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씨가 겪었던 이란은 소문과는 정반대의 나라였다. 까다로운 현지 규정에 대해 경찰서로 데려가 세세하게 알려주던 경찰, 드라마 『주몽』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고속도로 통행료를 대신 내주던 안내원, 대신 음료 값을 내주고 집에 초대해 요리까지 해준 한 가게의 사장님까지. 임씨는 “우리는 이란으로부터 짝사랑을 받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용기 있는 도전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이다.

임씨는 “도전을 한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청년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 또한 그렇다고 말했다. 세계 일주를 하고 청년이 되어 돌아온 그는 대한민국의 청년을 위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임씨는 ‘청년 여행 장학생’을 선발해 여행을 보내주고 있다. 또 현재는 본인을 따라 마을버스를 개조해 여행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청년 극단 ‘낯선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한국 청년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멀리서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고 전했다.

세계 여행을 마치고 그토록 바라던 여행 작가가 됐지만 임씨의 여정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는 “원래 세계 여행을 마무리할 때 북한을 거쳐 임진각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다”며 “당시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포기했는데 다시 상황이 좋아져 북한 여행을 꼭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임씨는 환하게 웃으며 “아버지도 했다! 지금도 하고 있고!”라고 했다. 청년들에게는 용기를, 중년층에게는 희망이 되고 싶다는 임씨. 그의 끝없는 도전과 열정을 응원한다.

 

*바위소금 : 천연으로 나는 염화나트륨의 결정. 바다에서 채취한 소금보다 순도가 높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사진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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