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여론칼럼 시선
[시선] 재팬 패싱과 전후 일본의 식민주의
  • 우리대학교 국학연구원 김항 교수
  • 승인 2018.05.19 21:42
  • 호수 1812
  • 댓글 0
김항 교수
(우리대학교 국학연구원)

재팬 패싱. 과연 자연스러운 영어 표현인지는 의문스럽지만 최근 신문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워딩이다. 남북대화를 계기로 70여 년 간 유지되어온 동아시아의 냉전질서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지금, 일본의 역할이나 자리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아베 정권의 외교적 무능 탓일까? 물론 국내 정치의 위기 타개용으로 북한 문제를 다뤄온 현 일본 정권의 책임이 가볍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역대 정권도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외적인 위기 요인을 증폭시켜 국내의 정치 갈등을 봉합시키는 것은 오래된 통치 기법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아베 정권이 현재 국면에서 답답한 처지에 놓인 까닭을 북한 때리기로 짭짤한 이득을 보려고만 한 얕은 수법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180도 태도를 바꾸는 유연성 또한 외적 요인을 내치에 활용하는 통치 기법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재팬 패싱이 인구에 회자되고 일본 정권이 좀처럼 묘수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상상력 부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70년 동안 안주해온 질서 외에는 현실과 미래를 포착하는 시각이 결여된 탓이다. 그 원인은 1945년의 패전 이후 스스로의 역사적 발자취를 대면하지 못했던 데에 있다. 특히 과거의 식민지배와 진지하게 마주하지 못했던 회피와 비겁이 오늘날의 상상력 부족에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사죄와 배상 문제가 아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의 일본이 식민지배의 역사를 철저히 회피한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었다는 근본적인 식민주의이다.

패전 직후 제국일본의 국가 엘리트 양성기관인 도쿄제국대학은 해체되어 도쿄대학으로 거듭난다.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난바라 시게루(南原繁)는 전쟁 시기 칸트주의에 입각한 이상주의를 바탕으로 시국 비판을 주저하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가 최고 학부의 수장에 취임한 것은 패전 후 일본에서 의미하는 바가 컸다.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는 충성스러운 천황의 신민이 아니라, 근대 계몽주의에서 탄생한 보편적인 세계시민이 일본 국민 재생의 목표임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난바라는 보편주의에 입각한 교육이념을 통해 교양과 양심을 구비한 보편 시민으로서 일본인을 재생시키려 했고, 그것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실현시켜 나갈 유일한 방법으로 간주했다. 일본 국민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최고 규범으로 삼는 세계시민의 보편주의를 통해 조국을 부흥시켜야 했던 것이다.

식민지배는 이런 틀 속에서 회고되고 반성된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타이완과 한반도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음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성과 사죄는 이들을 향하지 않았다. 전후 일본의 식민지배 반성은 언제나 인류를 향했기에 그렇다. 다시 말해 피와 살과 삶에 실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아니라, 평화와 인권을 체현하는 저 추상적 세계시민에게 반성은 이뤄졌고 책임은 발화됐던 것이다. 식민지배는 당대의 국제질서 속에서는 합법적이었고 다만 인류의 보편적 이념에 비춰봤을 때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상투적 표현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1945년 이후 열도에 머물던 피식민지 출신자들에 대한 처우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이들의 일본 국적을 일본 정부는 일방적으로 박탈하고 외국인등록을 강요하면서 지문날인을 강요했다. 당시 일본 법률에서 지문날인은 범죄자에 국한된 신원확인 절차였음을 감안하면, 일본 정부가 피식민지 출신자들을 어떻게 처우했는지 상세히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토록 인류 앞에서 책임을 떠안고 사죄를 약속하면서도, 실제 피와 살이 뜯기고 삶을 유린당한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한 현실은 전후 일본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후 일본이 그토록 소중히 여겨 머리를 조아린 세계시민과 보편주의를 체현한 것이 미국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까닭에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반성과 사죄가 주변국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항시 미국을 향한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모든 과오는 아시아의 사람들이 아니라 인류에게 저지른 것이라는 인식이 근저에 놓여 있었기에 그랬다.

그래서 전후 일본에서는 아시아를 수평적으로 마주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언제나 아시아는 인류라는 상위의 고결한 존재를 통해서만 전유됐다. 물론 수많은 명민한 이들이 수평적 시선을 고집했지만 번번이 물러나야만 했다. 위에서 말한 상상력의 부재는 여기서 기인한다. 많은 곤란이 가로놓여 있지만 현재 국면은 아시아의 사람들이 서로를 매개없이 직접적으로 마주하자는 시도이다. 현 일본 정권으로서는 당혹스럽다. 그런 시선은 고사하고 필요성조차도 느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와 보편주의는 이렇게 현재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곤란하다. 함께 잡히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 직접 서로를 마주하는 시선이 절실함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국면이 귀하고도 드문 기회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대학교 국학연구원 김항 교수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신과 삶을 전세계로”
[신촌·국제보도]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신과 삶을 전세계로”
연세, 폭우마저 꺾었다
[신촌·국제보도]
연세, 폭우마저 꺾었다
글자 없는 세상, 당신은 살아갈 수 있나요?
[사회]
글자 없는 세상, 당신은 살아갈 수 있나요?
연고전 화보
[포토뉴스/영상기획]
연고전 화보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