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죄가 없다

박성환 (사회·12)

이달 초, 교육부는 축제 기간 동안 대학 내 주류 불법 판매를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대학에 전달했다. ‘대학생 주류 판매 관련 주세법령 준수 안내 협조’라는 제목의 공문은, 대학생이 술을 판매하는 대학 주점은 주세법 위반사항이므로 주류 판매를 자제해달라는 내용이다. 여기에 덧붙여 ‘건전한 대학축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한다는 사족이 달려 있다.

대학축제의 모습은 실제로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직접 술을 파는 풍경은 사라진 대신 안주만 파는 주점 아닌 주점들이 등장했다. 학생들은 편의점에 들러 자신이 마실 술을 ‘안주집’까지 사 날랐다. 또 한편에서는 이미 사둔 술을 팔지 않고 지인들에 무료로 나누는 모습도 나타났다고 한다. 이제 학생은 법에 저촉될 일 없이도 여전히 술을 즐길 수 있는 대학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과연 이 광경들이 국세청과 교육부가 바라던 이상적인 대학축제의 모습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지금껏 통용되던 대학주점의 관행을 ‘주세법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금지하고자 했던 의도는 공문의 사족에 달려있다. ‘건전한 대학축제 문화’, 정확히는 술 없는 대학축제를 만드는 것이 교육부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축제 시즌마다 일어났던 일일주점의 성 상품화 논란이나 주취자 폭력 사건 등이 그 배경이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조치는 문제의 매듭을 푸는 것이 아닌 칼로 쳐내는 형식이다. 대학 사회 역시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작은 사회다.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술 강권문화, 성 상품화, 주취폭력 역시 한국사회의 반영일 따름이다. 다만 사건이 발생할 경우 문제를 공동체의 범위에서 사유한다는 점이 대학을 일반사회와 구분 짓는 대학의 정체성이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에서 대학사회야말로 ‘자치와 자정’의 기능이 여전히 살아있는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대학은 성 상품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인 동시에, 성 인식과 소수자에 대한 사유가 가장 치열하게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삐뚤어진 음주 문화나 군문화가 답습된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지만 또한 어느 사회보다 공동체 구성원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해마다 이어지는 사건·사고에 가려져 있지만 대학은 이미 변하고 있었다. 일례로 ‘성평등 자치규약’은 학내의 이성애중심주의를 탈피하고 성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총학생회 단위로 인준된 규약이다. 술자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폭력을 방지하고 위계에 의한 술 강권 등을 막는 내용도 담겨있다. 대학 문화가 지나치게 술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은 타당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개인적 차원이 아닌 공동체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모습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또, 대학 주점 문화가 정말 불건전하기만 했을까? 같은 공동체를 살고 있지만 마주하기 어려운 존재들이 대학 축제에는 나타난다. 축제 기간마다 가장 ‘핫’한 주점은 학내 노동자 단체의 주점이었다. 싼 가격에 맛있는 안주를 파는 몇 없는 축제 주점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었던 공동체의 일원들이 모여서 서로를 후원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대학 주점에선 가능했다. 그 뿐인가. 학과 교수님과 면 대 면으로 앉아 같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희귀한 기회가 대학 주점에선 이루어졌다. 각각 다른 대학으로 흩어져 얼굴 보기 힘든 친구들을 대학 주점을 핑계로 부를 수 있는 기회이자 학기가 시작되면 얼굴 보기 어려웠던 학우들이 함께 직접 안주를 빚고 서빙을 하고 호객행위를 하며 어울릴 수 있는 행사가 대학 주점이었다. 그 모든 일이 술이 없어도 가능하지 않은가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술이 없어야 할 이유도 없다.

대학 축제의 문제를 학생이 아닌 교육부가 나서서 통제하는 모양새도 별로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과정에 있다. 공문의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은 법 위반으로 처벌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해달라는 반 협박식의 내용이었으며 일방적으로 통보됐다. 국가기관이 학생들에게 범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명목상 ‘협조 요청’이더라도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유예기간을 두고 학생사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공문 발행보다 선행되었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솔직해지자. 공무원들도 대학시절 축제동안 경험했던 주점의 추억들이 한 둘은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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