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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의 추억이 쌓인 아지트오래됐지만 편안한 술집, 메시에
  • 이가을 기자, 천건호 기자
  • 승인 2018.05.07 19:03
  • 호수 41
  • 댓글 0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간판이 넘쳐나는 신촌 골목에 간판도, 조명도 어두운 술집, ‘메시에’가 있다. 오래됐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한 이 술집에는 몽상가이자 아나키스트가 산다. 신촌 한구석에서 사람들의 추억을 모으며 자신만의 공간을 꾸며 나가는 몽상가, ‘메시에’의 전재홍 사장을 만나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가게 소개 부탁한다.
A. 나는 몽상가 그리고 아나키스트다. 보통 아나키스트라고 하면 무정부주의자라든가 뭔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더라. 하지만 진짜 아나키스트는 법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 전에 사람들끼리 선의에 의해 합의된 것들을 자율적으로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나는 법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세상을 꿈꾸는 몽상가다. 메시에는 운영한 지 12년 된 술집으로 아나키즘이 살아 있는 조용한 가게다.

Q. 가게를 열게 된 계기는?
A. 나는 원래 IT 업종에서 일했는데, 그 업종은 나 같은 몽상가가 살기엔 답답한 조직 사회였다. 직장생활에 염증이 나 뛰쳐나온 후 지난 2006년부터 메시에를 운영하게 됐다. 조직 사회 속의 불합리함에서 벗어나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결과다. 당초엔 5년 정도만 하려고 생각했지만, 어쩌다보니 가게를 찾는 학생들과 정이 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Q. 메시에의 어떤 점에서 아나키즘을 느낄 수 있나?
A. 손님을 많이 받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곤 가게에 별다른 규칙이 없다. 사실 아나키즘이라는 게 별 게 아니라 암묵적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보니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도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덕분에 가게를 운영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불상사가 없었다. 가끔 취한 손님들이 흥이 나 목소리를 높인 적은 있지만, 손님들끼리 다투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지는 않았다.

 

Q. 손님을 많이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한 테이블 당 최대 6명까지만 받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진솔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가게가 되고 싶어 인원제한을 뒀다. 아무래도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면 경쟁 심리 때문에 소리가 커지지 않나. 그래서 혼자 혹은 둘이 온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사실 한 테이블 당 6명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많이 모여 다니고 싶어들 하니 그 특징을 생각해 허용했다.

 

Q. 메뉴판이 다른 곳과는 달라보인다. 독특한 메뉴판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A. 우리 가게의 메뉴판은 손글씨로 적혀져 있는 노트인데, 메뉴판을 적고 남은 공간을 방명록으로 쓰고 있다. 방명록에는 손님이 남기고 간 취중 진담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방명록이 사람들의 이야기로 꽉 차면 새 메뉴판을 만들고, 다 쓴 메뉴판은 손님들과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한곳에 모아 놨다. 나중에 방명록들을 한 데 모아 『신촌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

 

Q. 창가에 다양한 병들이 모여 있다. 쪽지가 붙어있는 병도 있는데, 어떻게 모은 것들인가?
A. 요즘은 모으지 않지만, 창가의 병들은 술을 마시고 간 사람들의 추억이다. 생일파티를 하며 양주를 먹는 학생들에게 가게에 대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병에 붙은 쪽지의 대부분은 그 술을 마신 손님이 쓴 거고, 드물게 내가 쪽지를 붙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그 손님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Q. 단골들과 관련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지?
A. 괴기스러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 손님이 하나도 없는 비 오는 날이었다. 혼자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수염이 긴 사람이 레인코트를 입고 들어와 바에 앉았다. 자기가 원하는 걸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물으며 ‘검고 지저분한 정맥의 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더라. 먼저 와인을 넣고, 블루 큐라소를 섞어 거무죽죽한 붉은색을 냈다. 피는 짜야 한다고 생각해 맛소금을 넣었고, 피의 따듯한 느낌을 내기 위해서 바카디도 네 잔을 넣었다. 놀랍게도 그는 귀신이 아니라 이미 거나하게 취한 의사였다. 그때 이 가게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후 지인들과도 이곳을 몇 번 방문하더라.

 

Q. 다른 가게에 없는 술이 있더라. 직접 개발한 것인가?
A. 다른 가게에 없는 술은 ‘메시에 스페셜’이다. 메시에 스페셜은 직장을 다닐 시절 친구들과 술을 섞어 마시다가 맛있었던 제조 방법만 추려서 만든 메뉴들이다. 메시에 스페셜에는 세인트와 엔젤, 그리고 데빌이 있는데, 각각 맥주에 진, 테킬라, 그리고 보드카를 섞어 만든 특제 맥주다. 거기에 옵션으로 다크와 헤이즐넛 다크를 추가할 수도 있다. 다크를 추가하면 에스프레소를, 헤이즐넛 다크를 추가하면 헤이즐넛 커피가 들어간다. 메시에 스페셜 중에선 헤이즐넛 데빌을 추천한다. 보드카가 들어가 깔끔하고, 은은한 헤이즐넛 향이 나서 메시에에 어울리는 은은한 향의 맥주를 즐길 수 있다.

 

Q. 메시에에게 신촌이란?
A. 신촌은 나에게 가장 편한 장소다. 학교를 신촌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신촌에 친구들이 많아 20대에 신촌에서 술을 마실 일이 많았다. 그것 때문인지 이 골목에 잊을 수 없는 추억도 많이 생겼고 자연스레 신촌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소중한 추억도 있고, 처음 낸 가게가 12년을 버티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신촌은 내게 새롭게 다가오기보다는 편하고 사람들과 인연이 닿는 곳이다.

 

글 이가을 기자
this_autumn@yonsei.ac.kr
사진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이가을 기자, 천건호 기자  this_autum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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