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대학생 실습, 이대로 괜찮은가

의료계 대학생에게 실습은 졸업 필수 조건이다. 환자의 건강과 연결된 문제인 만큼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일부 실습생은 ▲실효성 없는 업무 및 과중 업무 ▲명확한 기준 없는 실습생 의료 행위 ▲미흡한 현장실습 매뉴얼 ▲실습생 지원 부족 등 문제를 토로한다.

 

부족한 의료 인력에
허덕이는 실습 현장

 

의료 인력 부족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천 명당 활동 인력은 의사 2.3명, 간호인력 6명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인 의사 3.3명, 간호인력 9.5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그 여파는 실습 현장까지 이어진다. 바쁜 현장에 실습생을 ‘돌려막기’ 식으로 이용하며 일관성 없이 업무를 배정하는 것이다.

우선 실습 교육의 실효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실습생은 현장에서 일하는 담당 의사나 간호사(아래 담당 교사)를 배정받는다. 관찰과 설명 위주로 진행되는 실습에서 실습생들은 주로 담당 교사를 따라다니며 관찰하고 심부름을 한다. 우리대학교 의과대 학생 A씨는 “실습 내용은 사실상 교사의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담당 교사는 현실적으로 실습생들을 챙기기 힘든 상황이다. 당장 담당 교사의 업무 자체가 과중된 탓이다. 고신대 간호대 학생 B씨는 “교사 한 명당 평균 30명이 넘는 환자를 맡는다”며 “식사를 락커에서 할 때도 있을 정도로 바빠 실습생들을 봐줄 여력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서울 지역 병원 교수 C씨는 “나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실습생들을 챙기려 하지만 너무 바쁠 땐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담당 교사가 일관성 없이 실습생에게 그때그때 남는 잡무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회장인 우리대학교 이동재(의학·14)씨는 “학회 개최 시 실습생들에게 안내를 시키는 등의 사례가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B씨도 “말만 실습일 뿐 단순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냥 병동에 서 있으려고 2년 동안 공부를 했나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모호한 업무 기준에
무면허 의료행위까지?

 

명확한 기준 없이 실습생을 의료 행위에 투입하는 것도 문제다. 병원에서 실습생에게 허용하는 의료행위의 범위는 병원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간단하게는 초진과 혈당 측정은 대부분 허용되지만, 때로는 DRE(직장수지검사)*와 단순도뇨**, 정맥주사까지 실습생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가벼운 진료 수준을 넘어선 의료행위는 당장 실습생 본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습은 졸업 필수 조건인 만큼 실습 전 실질적 의료행위를 할 능력이 되는지 검증이 필요하지만, 해당 절차는 부재하다. B씨는 “학교에서 배우고 병동에서 실습을 바로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며 “그 사이의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교육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습생 본인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트위터에는 ‘병동 실습 시작한 뒤로 강박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실수할까봐 잠시도 안심할 수 없으며 집에 가서도 내가 잘못해서 환자가 잘못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잔다’는 글이 올라온 적도 있었다. 

환자들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병원 측은 의료행위 주체가 실습생이라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없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은 불안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실습생에게 주사를 맞았다는 김창희(77)씨는 “어려 보이는 사람이 진료를 하는 것도 겁나는데 나한테 주사를 놓은 사람이 실습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땐 화가 났다”고 전했다. 임은결(사복·17)씨도 “실습생에게 의료행위를 받는 게 불안하다”며 “차라리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전문의에게 진찰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악순환하는 실습 문제
출구는 있나

 

이런 상황에 교육부는 지난 2017년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매뉴얼」(아래 매뉴얼)을 배포했다.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의 체계화 및 표준화와 교육적 기능 확대 및 내실화 도모 등을 위함이다. 매뉴얼엔 ‘교육적 기능이 결여된, 노동력 활용차원의 단순근로 행태의 현장실습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매뉴얼은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 서울지역 대학병원의 실습 담당 관계자 D씨는 “매뉴얼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제대로 보거나 참고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대학교 박지용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료법)는 “법원은 매뉴얼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법을 해석·적용할 수 있기에 병원들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의료법」(아래 의료법) 역시 실습 시 업무 기준이 모호하다. 의료법 제27조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실습생에겐 ‘전공 분야와 관련된 실습을 하기 위해 지도교수의 지도·감독을 받아 행하는 의료행위’가 허용된다. 어느 정도의 의료행위까지가 실습생에게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규정은 전무하다. 이대로라면 현장 상황에 따라 실습이 실효성이 결여된 교육 또는 무면허 의료행위로 둔갑하기 십상이다. 박 교수는 “해당 조항의 내용이 다소 추상적”이라며 “의료행위에 관한 규정이 구체성을 결여한 채 그 운용이 법원의 판례나 법해석의 영역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실습 환경에 대한 감독과 현황 조사도 요구된다. 현장에서 실습생들이 겪는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 실습생들에 대한 학교의 재정 지원이 그 예다. 실습 기관이 될 만한 대형 병원이 특정 지역에 쏠려있는 탓에 지방 대학에선 학교와 먼 수도권으로 실습을 나가는 사례가 흔하다. 특히 자대병원이 없는 학교의 실습생은 새 병원에 배정될 때마다 해당 병원 근처에 임시로 방을 얻어 거주하기도 한다. 자취비와 교통비, 식비는 고스란히 실습생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상지대 간호대 학생 E씨는 “실습 기간에만 고시원비로 100만 원 이상을 썼다”며 “식비까지 합하면 부담이 더 커지지만 학교 측에서는 한 학기당 2만 원의 교통비만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현재 실습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현황 조사·연구와 더불어 행정적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대학생들에게 실습은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아직까진 의료계 실습에 대한 체계적 관리나 지원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장에 ‘내던져진’ 실습생들은 오늘도 제 살 길을 스스로 찾으며 병원에서 분주하다.

 

 

*DRE(직장수지검사): 의사가 환자의 항문에 손가락을 삽입하여 직장 아래에서 항문에 걸쳐 병소를 찾는 검사
**단순도뇨: 치료, 진단의 목적으로 방광 내에 도관을 삽입해 직접 방광에서 뇨를 채취하는 것

 

 

글 이찬주 기자
zzanjoo@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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