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를 만나봤다

50세로 보이지 않는 앳된 외모,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미소는 소박했다. 그에게 흠뻑 빠지기까지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대학교 88학번 동문이자 홍익대 건축학과에 재직 중인 유현준 교수 얘기다. 논현동 굽이진 골목길에 위치한 ‘유현준 건축사무소’에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유현준, 그에게 
‘건축’을 묻다

 


‘생각하는 건축가’, 유 교수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그가 설계한 건축은 특별하다. 그만의 인문학적 시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모 인기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를 사로잡은 그만의 ‘인문학적 시선’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유 교수는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다른 이의 생각을 주입받거나 강요당하는 걸 싫어했다”며 “그렇게 키워온 내 주관을 대중들이 신선하게 봐주는 듯 하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어 유 교수는 “정해진 규칙 따위를 싫어하는데 건축에는 그런 게 없다”며 “건축가가 된 이유도 나만의 시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가란, ‘최소한의 것’만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건축은 단순히 짓는다고 끝이 아니다. 사람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건축과 사람의 관계에서 그는 건축가의 역할이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건축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 의해 완성돼야 하고, 건축가는 조력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다. 유 교수는 “건축가가 빛, 물, 콘크리트 등을 사용해서 건축을 하지만 딱 거기까지여야만 한다”며 “그 이상은 건물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유현준, 그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것'은 무엇일까. 건축은 다양한 요소로 이뤄져 있지만, 그가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색(色)’이다. 유 교수는 “건축가가 선택한 색은 특정한 의도를 줄 수밖에 없고 이는 건축가의 역할을 넘어서는 행위”라며 “건축가가 쓰는 특정한 색으로 인해 거주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싫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 교수는 본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축가로 '안도 타다오*'를 꼽았다. 안도 타다오가 즐겨 쓰는 색은 흰색이다. 흰색은 꾸밈이 없다. 흰색으로 칠해진 벽은 정오엔 밝게 보이다가 해질녘엔 불그스름하게 느껴진다. 유 교수는 “흰색을 사용한 공간은 건축가가 아닌 자연에 의해서 채색된다”고 덧붙였다.

 

유현준이 말하는
‘연세’와 ‘신촌’

 

유 교수는 건축물이 사람을 위한 공간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이 좋은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꼭 30년 전 교정을 거닐었을 그는 우리대학교라는 공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우선 그는 신촌캠을 두고 “건물들이 배치된 모양새나 전체적 조감도를 볼 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라고 칭찬했다. 이어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역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언더우드관이 아닐까 싶다”며  유 교수는 언더우드관을 건축적으로 가장 뛰어난 건물로 꼽았다.

그렇다면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어떨까. 지난 2015년 마무리된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지하 주차장과 지상 보행자 전용 도로 확보를 위해 시작했다. 추진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프로젝트지만 유 교수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땐 그는 “특히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사람이 지상을 걸을 수 있게 만든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또 유 교수는 “백양로는 우리대학교의 광장”이라며 "다양한 건물이 모여 있는 백양로는 곧게 뻗어 있는데, 이 길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만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엔 외연을 조금 넓혀보기로 했다. 그에게 신촌은 어떤 곳일까. 그는 신촌의 정체성을 ‘대학’과 ‘대학생’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가 대학생인 시절의 신촌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유 교수는 “당시 신촌은 직장인들이 주로 모여 회식하고 즐기는, (대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좀 칙칙한 분위기였다”며 “술과 담배 등을 원체 싫어하는 나는 신촌에서 마음껏 놀고 즐기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유 교수는 “그래도 지금의 신촌은 직장인보다 대학생이 즐겨 찾는 곳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대표적 번화가인 홍대와 신촌을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에 따르면 홍대는 클럽과 술집이 밀집해있고, ‘욕구’에 충실할 수 있는 본능적 공간이다. 유 교수는 “신촌이 홍대보다는 덜 본능적이지만 세련됐고 느낌 있는 카페와 학구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곳”이라며 “오늘날 많은 문제를 겪고 있는 신촌이 나아갈 방향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촌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에게 도시는 유기체와 같다. 성장이 있으면 쇠퇴도 있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신촌은 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유 교수는 “높은 월세와 권리금에 중소 상인들은 내쫓겼고 사람들은 전처럼 신촌을 찾지 않는다”며 “당장은 신촌이 내리막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신촌이 항상 좋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라고 반문하면서 “칙칙한 술집과 상가보다는 가난한 대학생, 돈 없는 벤처 사업가를 위한 젊은 공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뉴요커와 학교로 보는 
‘공간의 권력학’

 


유현준, 그의 요즘 관심사는 ‘학교’다. 유 교수는 오늘날의 학교 건축을 “학생을 전체주의자로 만드는 건축”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담장으로 둘러싸인 건물은 학교와 교도소, 단 두 개다. 운동장과 건물 하나로 이뤄진 구조부터 담장을 넘으면 처벌 받는 것까지 똑같다. 이런 전근대적인 학교 구조는 학생을 획일화한다. 유 교수는 “학교에서 ‘잘 나가는’ 학생은 공부를 잘 하거나 축구를 잘하는 학생뿐”이라며 “교실과 운동장이 학교 공간의 전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대안은 없을까. 유 교수는 “학생들은 자연이 필요하다”며 “학령인구 감소로 생긴 빈 교실을 부수고 정원이 딸린 테라스를 만들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유현준스러운’ 발상이다. 

실제로 유 교수는 운동장을 중심으로 1~2층의 저층건물 본관 여럿이 둘러싼 형태의 학교를 설계한 경험이 있다. 당시 유 교수 설계에 의하면, 학생들은 수업을 듣기 위해 건물을 나와 또 다른 건물로 이동할 때 운동장을 반드시 가로질러 가야만 한다. 운동장은 흙과 나무로 꾸며져 있다. 자연을 최대한 접할 수 있는 구조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학생 대부분이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고, 운동장은 못 쓰며, 하교 후에는 학원에만 가는 일상에서 무슨 변화가 있겠나”라며 “학생들 모두가 운동장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학년에 상관없이 운동장에서 만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건축은 사람을 잇는 통로가 돼야 한다는 게 유 교수의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한 사람이 누리는 공간이 차이 난다. 이른바 ‘공간의 권력학’이다. 유 교수는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전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나”라며 “건축이 계급 간의 갈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말했다. 평범한 이들은 원룸에 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돈 많은 회장님은 큰 집에 살며 자가용을 타고 골프장에서 여가를 즐긴다. 

이런 상황에선 공적 공간이라도 누려야 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 평범한 사람 대다수가 몇 평 남짓한 집에 산다. 대중교통은 사람들로 매일 북적거린다. 공간의 부재, 특히 공적 공간의 부재는 이처럼 우리에게 답답증을 야기한다. 유 교수는 “뉴요커들도 좁은 집에 살고 뉴욕의 끔찍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자유롭게 살아간다”며 “이는 뉴요커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공적 공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유 교수는 “뉴요커는 센트럴파크를 걷고 모마**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며 “그에 비해 우리는 공원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 사회에서 아파트와 커피숍이 빼곡한 거리를 걷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적 공간이 부족한 만큼 그 빈자리를 공적 공간이 메워줘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게 부족하다”며 “결국 돈 많은 사람만이 더 넓은 공간을 소유하며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라 덧붙였다. 

 

인터뷰가 마무리에 다다를 무렵, 그는 “현명한 사람은 다리를 만들고, 멍청한 사람은 성을 쌓는다”라는 격언을 인용했다. 그에게 오늘은 ‘성’이 가득한 곳이다. 그는 성이 아닌 ‘다리’가 있는 내일을 꿈꾼다. 그가 꿈꾸는 세상을 기대해본다.

 

 


*안도 타다오: 건축물 내에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조화롭게 설계하기로 유명한 건축가. 특히 자연과 건축 간의 공존에 능해 ‘건축의 누드작가’로 불린다. 유 교수는 건축의 본질에 집중하는 타다오의 건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모마(MoMA): 뉴욕 현대 미술관
 

 

 

 

글 정준기 기자
joonchu@yonsei.ac.kr

사진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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