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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일간베스트 저장소 폐지 관련 청와대 청원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혐오와 폭력은 그것이 혐오와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할 때 가장 파괴적이다
  • 장찬(경제·18)
  • 승인 2018.03.31 17:56
  • 호수 1809
  • 댓글 0
장찬
(경제·18)

사람에게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꽤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범죄나 악행들을 말할 것이다. 실제로 특정 여학교의 학생을 강간할 것이라는 글이 올라와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 있었고, 전자발찌를 착용한 사진을 올려 자신이 성범죄자임을 당당히 드러낸 일화도 있었다. 세월호 단식 농성장 옆에서 폭식 집회를 열기도 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울랄라세션의 보컬 임윤택, 세월호 참사 피해자 등 고인들에 대한 능욕은 일상화되어 있다. 강간 모의, 성매매 경험 공유 및 주선, 불법 촬영 영상 유포 등 각종 성폭력의 온상이었던 소라넷은 2016년 4월에 폐지되었다. 이 말은 즉, 일베에서 저질러진 범죄와 악행만으로도 일베를 폐지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할 일이 없으면 페이스북을 켜서 유머 글들을 읽곤 한다. 생각 없이 웃고 생각 없이 넘기는 건 분명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콘텐츠의 출처가 일베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러 그 속에는 혐오와 폭력이 소름 돋을 정도로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생각 없는 사람은 “그저 유머인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곤 한다. 아니다. 오히려 유머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이름부터 유머 페이지임을 표방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유머저장소”는 약 8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대형 페이지이다. 관리자는 일베와 일베의 어머니뻘 되는 디씨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 등지의 글들을 콘텐츠화하여 페이지에 게시한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유머와 극우적인 정치색이 드러나는 유머가 적절히 섞여 올라오다 보니, 원래 뚜렷한 정치색을 가지지 않은 팔로워라 하더라도 점차 그러한 분위기에 동화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팔로워들은 유머저장소의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 혹은 유머저장소가 저격한 사람의 타임라인에 몰려가 집단 테러를 가한다. 당연히 테러대상은 진보적, 페미니즘적 성향을 띠고 있는 사람이다. 한편 한샘 사내 성폭력 사건, 세월호 사건 등 여러 시사적 사건의 사실관계를 교묘히 비틀어 사건 전체를 왜곡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댓글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루어지거나, 페이지 관리자를 찬양하는 댓글이 달리거나, 사건에 대한 또 다른 왜곡과 선동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일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일어났지만, 자체적으로 자정작용이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혐오와 폭력은, 그것이 혐오와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할 때 가장 파괴적이다. 일베, 혹은 유사 페이지와 커뮤니티는 혐오와 폭력을 유머와 ‘끼워 판’다. 유머의 형태를 띤 폭력은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의식에 각인된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소비자들은 어느새 폭력을 유머처럼 자연스레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미시 파시즘은 사회의 차별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기여한다. 폭력이 폭력을 재생산하는 꼴인 것이다.


‘병신’, ‘김치녀’, ‘된장녀’, ‘맘충’, ‘여적여’ 등의 어휘에서 볼 수 있듯,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대한민국만큼 널리 통용되고 정당화되는 국가는 드물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일베가 일익을 담당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혐오와 폭력이 더더욱 공고해지기 전에, 폭력의 악순환이 더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일베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상상해 보라. “여자는 삼 일에 한 대씩 패야 한다.”는 말이 그저 가벼운 말장난으로 여겨지는 사회를. 강간 가해 경험을 무용담으로 소비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회를. 장애인에게 “병신”이라는 단어를 쓰며 낄낄대도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를. 필자만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래서 지금이어야 한다.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일베’라는 글자만 봐도 거부감을 느끼는 지금이어야만 한다.

장찬(경제·18)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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