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양진혁 (경영·18)

지난 23일, 청와대는 극우 성향 온라인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사이트를 폐쇄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대해, 명예훼손 등 불법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후 사이트 폐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10년 가까이 일베는 극우 성향의 게시글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으나, 최근의 논란은 단순히 정치성향적 표현 때문은 아니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포괄적 대상을 향한 그들의 혐오 발언이 23만에 달하는 국민청원을 가능하게끔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베에 관한 논의를 단순히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 위에서만 쌓아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선 그들의 혐오 발언 심리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사회학자는 저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비이성의 총체로 여겨지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매우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나치는 유대인에의 멸종을 통해 그들만의 제국을 개선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전문화 시스템, 관료제와 분업이라는 현대의 합리성을 근거로 학살을 자행했다. 많은 이들이 사회적 약자와 특정 인물군에 폭력적 혐오 발언을 여과 없이 내뱉는 일베를 비이성과 광기의 집단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일베는 스스로를 합리성과 객관성을 견지하며 팩트를 중시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일베에서 게시글을 올릴 때, 팩트를 제시하지 않는 글은 감성팔이를 한다며 비판을 받는다. 그들에게 팩트가 명확한 글은, 해당 글의 범주가 무엇이든 ‘표현의 자유’라는 합리적 가치들로 정당화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합리성을 표방하는 일베’, 그들은 누구인가. 혐오 발언을 여과 없이 내뱉는 그들을 사회생활에 쉽게 적응하기 힘든 히키코모리라 간주하기 쉬우나, 일베 구성원 중 다수가 사회에서 정상적 범주 내에 들어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베 내에서 인증 열풍이 불었을 때, 많은 구성원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명문대생이나 전문직 종사자라는 점이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부분에서 일베는 어디에나 있는 보통의 주변인임을 견지해야 한다. 바우만이 지적했듯이, 악은 해당 사회의 정상성을 표명하며, 평범한 채로 도처에 잠복하고 있다. 결국, 일베는 도덕적 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 경쟁과 효율성에 등치 된 합리성을 맹신한 한국의 경쟁 세태가 낳은 괴물이라 볼 수 있다.


‘일베 사이트를 폐쇄해야 하는가’라는 논의로 돌아가 본다면, 일베는 폐쇄할 근거가 미약하며, 폐쇄의 실효성 역시 불분명하다. 지난해 폐쇄된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과는 경우가 다르다. 소라넷은 실질적으로 음란물을 올리고 관리하는 책임이 운영진에 있다는 점이 드러났고, 방조 및 직접가담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차단된 것이다. 반면, 일베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고정된 주체나 조직이 아닌, 하나의 열린 온라인 플랫폼에 불과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사이트 폐쇄’로 이어질 것이 아니라, 개인 및 사회가 침해당한 이익과 보호하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를 놓고 이익형량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법의 위반을 따지고자 한다면, 형법상의 명예 훼손죄와 모욕죄 처벌, 민사 소송 나아가 행정적 제제 따위를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위에서 따져본 일베의 심리에 근거한다면, 일베 폐쇄는 아주 자연스럽게 제2의 일베 탄생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일차원적인 일베 폐쇄라는 사이트를 향한 해결책은 단순한 플랫폼 변경을 통해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 오히려 한층 더 강화된 명예 훼손죄와 모욕죄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구성원 자체의 제제와 계도를 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경쟁 시류에 편승하지 못한 것이 일련의 패배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 세태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각자의 고민이 모여 우리 사회 공론장을 이루고, 청소년에게 미디어 리터러시와 같은 사회적 시각을 키우는 교육의 역할이 제 기능을 수행할 때, 비로소 이번 일베 논란의 근본적 해결에 다다를 수 있다.


물론 일베 폐쇄에 찬성하는 이들이 보편적 질서로 획득하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어쩌면 민주사회의 핵심적인 가치에의 지향일 수 있다. 필자 역시 일베 자체에 대해 극히 혐오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련의 코드를 향한 비생산적 공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한국 사회의 공론장은 그야말로 배타적 갈등의 양상이 폐쇄적인 구조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코드 간의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주도적 여론의 억제력을 통해 상대 코드에 대한 파괴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궁극적 지향에 가까워지기보다는 반대를 향한 분노와 분열만이 우리 사회를 휘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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