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과 『캐롤』 그리고 마티니 이야기

“보드카 마티니, 젓지 않고 흔들어서”

 

분위기 있는 바에서 당당하게 독특한 방식의 마티니를 주문하는 본드의 모습은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왜 마티니가 신사의 술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은 영화 속 한 장면. 마티니하면 영화 『007』 속 본드의 멋들어진 이 대사가 떠오른다.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액션, 뛰어난 능력을 겸비한 제임스 본드와 그를 주인공으로 한 『007』. 『007』 시리즈의 첫 시리즈부터 가장 최근 개봉한 스펙터까지 본드의 진득한 술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본드가 즐겨 마시는 이 마티니가 어떤 술인지 모르더라도 한번쯤은 근사한 바에 앉아 주문해보고 싶은 레시피다. 그렇다면 다음,

 

"수란이 올라간 크림시금치와 드라이 마티니"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캐롤』의 첫 데이트 장면이다. 첫 데이트 자리에서 몸만 배배 꼬던 테레즈(루니 마라 분)에 비해 어딘가 능숙한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의 주문. 숙련된 캐롤의 선택과 달리 어색하기만 한 테레즈의 행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첫 식사자리에서 능숙하게 시킨 드라이 마티니를 한 모금 들이키며 내뱉은 캐롤의 한 마디 “참 신기한 사람 같아요, 하늘에서 떨어진 듯이”는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이 설레는 장면에서 드라이 마티니는 당당하고 우아한 캐롤의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본드와 캐롤이 즐겨 마시는 술 마티니는 베르무트*를 제외하면 넣는 술이나 재료가 다양하며 이에 따라 더티 마티니, 프루티니(과일을 넣은 마티니) 등 그 명칭이 달라져 종류가 수십 가지에 달한다. 두 번째 이야기가 마티니인 만큼, 이번 역시 기자가 직접 신촌에서 마티니를 맛볼 수 있는 칵테일바 ‘러프(Rough)’를 찾아갔다.

기자가 찾아간 러프에서는 보드카 마티니는 판매하고 있지 않았으나 드라이 마티니를 변형하는 형태로 따로 주문이 가능했다. 이곳에서는 드라이 마티니(8천300원) 외에도 애플 마티니(7천900원), 에스프레소 마티니(7천900원)를 판매하고 있었다. 기자는 『007』의 보드카 마티니, 『캐롤』의 드라이 마티니 그리고 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프루티니 애플 마티니를 맛봤다.

 

액션의 대명사 본드가 찾은 술은 

이 중에서도 보드카 마티니에 해당한다. 보드카 마티니는 가장 기본이 되는 마티니 종류인 드라이 마티니에 진 대신 보드카를 넣은 것으로 보드카티니, 캥거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26도 정도의 이 칵테일은 드라이 마티니에 비해 도수는 낮지만 심플한 맛 덕택에 입맛을 돋우는 식전술로도 사랑받고 있다. 술을 다 마신 뒤 들어있는 올리브로 가볍게 입가심을 하는 것도 마티니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 

직접 입에 대기 전 보드카 마티니의 냄새를 맡았을 땐 알코올향이 훅 올라왔다. 하지만 예상 외로 첫 맛에서는 알코올향도 강하지 않았고 그다지 특별한 향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심플해 입가심으로 적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혀가 저릿해지는 동시에 알코올 맛이 나 진한 향이 느껴졌다. 보드카 마티니는 저어 섞는 것이 기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처음 술이 만들어졌을 때는 젓는 것과 흔들어 섞는 두 방법이 모두 쓰이기에 어느 쪽이 원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굳이 주문할 때 섞는 법을 말하지 않으면 젓는 경우가 대다수라 기자는 저어 만든 마티니를 마셨다. 하지만 본드가 시킨 흔들어 만든 마티니는 저은 것보다 부드러운 맛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우아한 그녀, 캐롤이 선택한 술은 

마티니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드라이 마티니다. 드라이 마티니는 드라이진과 베르무트를 5대 1로 섞어 만들며, 높은 도수의 술 두 종류를 섞어 35도라는 높은 도수와 아주 쓴맛을 자랑한다. 가장 대중적인 칵테일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시켰다간 씁쓸하고 강한 알코올 맛에 달콤한 칵테일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십상인 술이 바로 드라이 마티니다. 

기자의 환상 역시 드라이 마티니를 직접 마셔보면서 깨졌다. 높은 도수에 비해 달달한 냄새가 났던 드라이 마티니는 냄새 때문인지 성분을 알고 있음에도 달콤한 맛이 기대됐다. 첫맛은 그랬다. 처음에는 달큰한 맛과 올리브향이 많이 났다면 뒤에는 점점 목이 따뜻해지는 느낌과 함께 쌉싸름한 맛이 감돌았다. 끝맛이 쓰다 보니 씁쓸한 맛이 입에 계속 남아있었다. 씁쓸한 맛이지만, 깔끔하고 클래식한 이미지 덕택에 드라이 마티니는 강하고 능숙한 술로 묘사되곤 한다. 실제로 영화 『캐롤』의 감독 토드 헤인즈는 캐롤의 우아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연출로 드라이 마티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전해진다.

마티니는 『007』의 본드가 마신 술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남자의 술’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 별명은 마티니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전부 설명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캐롤』만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마티니는 무언가 성숙하고 카리스마 있는, 강렬한 느낌을 우리들에게 전달한다. 결론은 그거다. 마티니는 우아한 술, 분위기 있는 술이지, 남자의 술이란 표현만으로는 정리하기 힘들다는 것.

마티니에는 남자의 술 대신 또 다른 별명도 있다. 바로 ‘황제의 술’이다. 이러한 별명이 붙은 것은 이 술을 마시는 순간만큼은 당신 역시 황제같이 우아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소주로 인생을 달래기보다 가끔은 색다른 마티니, 이 한 잔의 술로 영화 속 한 장면같이 멋들어진 기분을 내보는 건 어떨까.

 

Tip: 이렇게나 우아한 마티니를 즐겨보고 싶으나 높은 도수가 무섭다면? 

프루티니로 차차 마티니의 매력에 입문해보는 건 어떨까. 앞선 두 마티니와 다르게 냄새를 맡아봤을 때 애플 마니티는 사과 탄산음료와 비슷한 향이 났다. 맛 역시 달달하며 새콤한 사과주스를 먹는 느낌이었으나 목 넘김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앞선 두 마티니의 씁쓸한 맛이나 높은 도수가 부담스럽다면 과일을 첨가해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프루티니 애플 마티니를 추천한다.

 

*베르무트: 와인을 원료로 하여 브랜디와 당분 등과 약재를 가미한 혼성주의 일종

글 윤현지 기자
hyunporter@yonsei.ac.kr
사진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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