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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어디쯤 온 걸까?혼술하기 좋은 술집, ‘Where are we’에 다녀오다.
  • 김나영 기자, 천건호 기자
  • 승인 2018.03.31 16:48
  • 호수 40
  • 댓글 0

앞만 보고 가다간 길을 잃기 마련이다. 가끔은 뒤돌아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 확인하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기왕이면 분위기 있는 음악, 책 한 권, 그리고 술 한 잔과 함께. 이런 격조 있는 ‘혼술’을 지향하는 ‘Where are we’의 권태훈 사장을 만나봤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가게 소개 부탁한다.

A. 가게를 연 지 1년 정도 된 권태훈이다. 우리 가게는 격조 있게 우울할 수 있는, ‘중품격 고독함’을 지향하는 혼술집이다. 간혹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가급적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게로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메뉴판에도 혼자 오신 손님을 위해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써놨고, 단체 손님 자리가 하나밖에 없기도 하다. 혼자 오시는 분들은 대환영, 둘이 오시면 적당히 환영, 셋부터는 조금 애매하다. (웃음)

 

Q. 가게를 열게 된 계기는?

A. 혼자 술 마시며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혼술’ 특유의 고독한 감성을 만족시키는 가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보통의 술집들은 너무 흥겹고 시끄럽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핍과 더불어 개인적인 고민도 계기가 됐다. 지난 2016년, 어지러웠던 탄핵 정국을 지켜보며 분노도 느꼈지만, ‘내가 의미 있게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복잡한 시기에 삶을 다시 돌아보니 ‘혼술’을 할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제대로 ‘혼술’할 수 있는 가게의 필요성을 다시 크게 느꼈고 결국 가게를 차리게 됐다. 내가 술 먹기 편한 가게를 만든 것이다. 

 

Q. 가게 소개에서 언급한 ‘중품격 고독’은 무엇인가?

A. 우리 가게는 철저하게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가게다. 하지만 보통 ‘혼술’이라 하면 어딘가 없어 보이는 느낌이 있지 않나. 그게 아니라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며 감성에 젖는 사람이 품격 있다는 표현을 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고품격’이라 칭하자니 신촌 상권이나 주변 분위기가 그렇게나 품격이 있진 않아 보이더라. 그래서 한 단계 낮춰 ‘중품격 고독’을 지향한다고 했다. 

 

Q. 가게 이름에 숨겨진 뜻이 궁금하다.

A.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에서 따왔다. 여자 주인공이 “Where are we?(우린 어디쯤 있는 거지?)”라는 묻자 남자 주인공은 “I guess we’re just going to wait and see(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라고 답한다. ‘우린 지금 어디쯤 있는 것이냐’라는 대사가 계속 생각해오던 가게의 지향점을 잘 드러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혼자 술 마시면서 연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진로에서도 우리가 지금 어디쯤 있는 건지,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

 

Q. 책이 꽤 구비돼 있다. 선정 기준과 특히 추천하는 책은?

A.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지만 지양하는 책들은 있다. 자기계발서와 같이 ‘성장’과 관련된 책들은 들여놓지 않는다. 그런 발전적인 책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보게 하는, 또 반문하게 만드는 책들을 가져다 놓는다. 『지금 다시, 칼 폴라니』가 바로 그런 책이다. 제일 좋아하는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의 사상을 담았다. 요즘 경제 정책이 과도하게 효율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지 않나. 그러나 사실 효율을 올리려면 인건비나 유지보수 등의 비용을 줄여야 한다. 효율을 위해 사람들이 직업을 잃기도 하고 안전에 위협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칼 폴라니는 이에 반문한다. ‘왜 그렇게까지 효율을 높여야 하나.’ 경제는 사회를 조금 더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이 괴리되는 느낌을 요즘 자주 받는다.

 

Q. 비슷한 느낌의 미술작품이 여러 개 걸려있다.

A. 모두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현대인의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라고 하더라. 작가가 그림에 담아낸 것들이 실제 미국 20세기 초반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많이들 외로워하고 우울해하는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과도 유사하다고 느껴져 좋아한다. 고독한 모습을 잘 담아낸 그림들인데, 가게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많이 걸어놓았다. 

 

Q. 추천하는 메뉴가 있나?

A. 맥주를 제일 추천한다. 그 중에서도 피넛버터 밀크 스타우트와 제주 에일. 둘 다 신촌에 별로 없더라. 피넛버터 밀크 스타우트는 조금 비싸긴 한데 이름처럼 구수하고 부드러운 흑맥주다. 제주 에일은 원래 제주도 관광 가면 많이 사 오는 맥주라고 한다. 제주를 생각하면 느껴지는 그 청량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향이 좋은 에일 맥주다. 

 

Q. 특별히 기억나는 손님이 있나?

A. 가게에 남녀 커플이 왔다. 둘이서 얘기하다가 여자와 혼자 온 다른 손님이 갑자기 서로 알아보더라. 알고 보니 서로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혼자 왔던 손님이 예전에 이 자리에 있었던 재즈바를 운영했던 사장님이었고, 여자는 그 가게에서 알바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 재즈바에 손님으로 왔던 남자가 알바중인 여자에게 한눈에 반해 매일 찾아오다가 커플로 발전됐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남자도 사장님과 아는 사이였다. 여자는 알바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티스트였고, 남자도 음악을 준비했던 터라 서로 감성이 맞아 만나게 됐다고 했다. 그랬던 세 사람이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가게가 그리워져서 방문한 것이었다. 결혼을 앞둔 둘과 그 둘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사장님이 오래도록 옛날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젖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 우리 가게에서도 그런 인연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Q. 독자에게 한 마디.

A. 혼자 술 마시면서 과제 하실 분 환영한다. 보통 집에서 혼자 캔맥주 마시면서 과제를 하거나 자기소개서를 쓰지 않나. 여기서는 그것들을 더 좋은 음악과 술, 그리고 분위기에서 느낌 있게 할 수 있다. 나도 손님 없으면 혼자 딴짓을 하곤 한다. (웃음)

글 김나영 기자
steaming_0@yonsei.ac.kr
사진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김나영 기자, 천건호 기자  steaming_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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