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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사는 건 말썽
  • 이혜인 매거진부장
  • 승인 2018.03.24 23:38
  • 호수 1808
  • 댓글 0
이혜인 매거진부장
(국제관계·16)

요즘 사회를 바라보고 있자니, 튤립투기에 대한 영화 『튤립피버』가 떠오른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바니타스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는데, 요즘 다시 이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7세기의 네덜란드와 지금 우리 사회가 매우 유사해 보인다. 당시 네덜란드는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으로 부푼 튤립투기 열풍에 편승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물질주의의 무의미함이 당시 사회상으로 반영됐고, 바니타스화는 이를 표현했다. 화가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해골, 모래시계, 촛불, 꽃등을 소재로 사용했다. 이 소재들은 각기 다른 저마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해골은 생명을, 모래시계와 촛불은 시간을, 꽃은 젊음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무의미한 것들. 바니타스화는 꽃을 시든 꽃으로, 촛불은 불이 꺼져 있도록 그리며 ‘죽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득 내가 삶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회의적인 사람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내가 왜 죽음에 대한 운을 뗐는지. 그런데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 아닌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현재는, 17세기 네덜란드 시대와 매우 유사해 보인다. 필요 이상의 겉치레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게 명예든, 돈이든, 지식이든. 삶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하지 않고 탐욕하게 된다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에서 세속적 욕망을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 아닌가. 물론 성공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쁜 행위라는 것은 아니다. 대신 옳지 않은 모든 방법으로 자신의 욕정을 이루려는 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온갖 편법을 수단해 비리를 저지르면서 재산을 늘리는 자들. 다른 이들의 염원을 무참히 밟아버리면서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높이는 잔인한 자들.

그들은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것도 고통스럽게.

어떤 방식으로든 약한 자들을 밟고 올라가 이들에게 고통을 준 자들은 자신이 가한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 받아온 자들의 이면이 드러났다.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고 얼굴에 먹칠이 칠해지자,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았을 가해자들은 도피처로 죽음을 택했다. 자신의 명예가 깎이는 것을 보는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끝냈을지도 모른다.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진 나머지, 고통을 없애는 방법으로 삶을 끝낸 자들이라면 더욱.

죽음으로 자기가 당한 일을 밝힌 고 장자연씨. 그녀의 죽음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국민청원은 24일 현재 21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라고 요청한 청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힘없고 빽 없는 사람이 사회적 영향력 금권 기득권으로, 꽃다운 나이에 한 많은 생을 마감하게 만들고 버젓이 잘살아가는 사회. 이런 사회가 문명국가라 할 수 있나요. 어디에선가 또 다른 장자연이 느꼈던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일상에 잔존하는 모든 적폐는 청산돼야 합니다.”

나는 기득권자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다른 이를 밟아놓는 잔인한 행위들. 세속적 욕망을 떨쳐내지 못해 드러내게 되는 추악한 모습들. 결국은 모두 무엇을 위한 행동이었는가.

이혜인 매거진부장  hyein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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