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선 교수 (우리대학교 간호대)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를 의미하는 비인권적 용어이다. 이러한 비인권적 행위는 폭행, 폭언, 따돌림의 형태로 은밀한 곳에서 벌어진다. 간호사의 태움 문화는 2005년 전남대 화순병원 간호사의 자살을 계기로 당시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2006년에도 한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13년이 지난 2018년 2월에는 국내 일류병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일류병원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보다 상황이 열악한 병원에서 더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을 것임을 짐작케하고, 2005년 첫 사건 이후 어떠한 정확한 진단이나 구체적인 해법도 마련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의료기관에서 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갈 정도의 태움이 존재해 왔다는 것은 이들의 손에 생명을 맡기는 국민의 간담도 서늘하게 만든다.

간호사의 태움 문화는 의료기관이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복합적인 원인으로 얽혀 있다. 전국 204개의 간호대학 중 해당 대학의 교육과정과 일관된 실습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자대 병원이 있는 곳은 20%뿐이다. 따라서 80%의 대학은 대상 병원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간호평가원이 대학인증을 위해 요구하는 1000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간호는 과학이자 예술로 이론적 지식 위에 실습을 통한 수행능력이 더해질 때 간호라는 완성작품이 나온다. 질 좋은 실습교육을 받지 못한 간호대학 졸업생은 간호사로서의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병원에 투입된 신규간호사는 병원에 따라 경력간호사로부터 1달에서 3달 정도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을 교육하는 경력간호사는 만성적 간호 인력 부족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기 몫의 환자를 돌보면서 교육을 담당하므로 이들에게는 교육 자체가 또 하나의 업무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생명을 다루며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업무의 특성으로 인해 교육은 때로 폭압적 형태로 변질되어 태움이라는 조직문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2015년 기준 병, 의원 등의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전체의 45.1%, 간호사 평균근속연수 5.4년, 경력간호사 이직률 12.6%, 1년 미만의 신규간호사 이직률은 무려 33.9%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6년 병원간호사회의 보고에 의하면 20~50대의 유휴 간호사가 10만 명을 넘는다. 이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의 낭비인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간호대학 입학생 증원이라는 양적 해법으로 지난 2년 동안 실습지가 열악한 지방에만 1,700명을 증원했고, 재학생의 학습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어 학생과 교수의 공분을 샀다.

간호학과 실습환경이 좋은 수도권 대학에 증원을 허락하는 융통성을 기했더라면 태움 문화와 간호 인력의 문제해결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신규간호사에 대한 교육은 1년 과정의 표준화된 Nurse Residency Program을 적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업무 및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맞춤 교육을 진행한다. OECD 국가에서 의료기관, 병상, 의료장비 등 구조적인 면에서는 상위권에 위치하고 의료인력이나 훈련 프로그램 등에서는 하위권을 보이는 한국의 양극화 현상이 태움 문화를 낳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병원 내에서의 태움 문화는 간호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5년에는 살인적인 근로시간, 낮은 임금, 태움 문화 등의 근절 없이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공의의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전공의가 처한 환경 문제는 여러 연구에서 제시한 간호사의 이직 사유와 유사한 문제들이다. 따라서 정부는 먼저 모든 의료기관이 법에서 정한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을 준수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저임금이라는 추상적인 용어 대신 간호사의 연봉이 해당국 임금근로자의 평균연봉에 10%를 더한 금액이라는 OECD 통계연보를 참고하여 최저임금제를 도입함으로써 의료기관 종별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도록 해 중소병원과 지방병원의 인력난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서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간호사를 별개로 한 것은 이미 10% 이상이 52시간 이상을 근무하고 있는 상황을 간과하고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간호사의 태움 문화는 가해 기관이나 가해자를 처벌하는 땜질 처방으로는 2005년의 경우와 달라질 수 없다. 10만 명이라는 유휴인력을 일터로 유인하고 이직률을 낮출 수 있는 정부와 관계기관의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만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마지막으로 간호사로서 인류에 봉사하겠다는 꿈을 펼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기대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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