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학원생 노동조합이 답하다

지난 2월 24일 결성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대학원생의 노동권 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대학 25곳이 참여 중이며 대학원생 수백 명이 가입돼 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위원장, 강태경 부위원장을 만났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위원장과 강태경 부위원장의 모습이다.


Q. 왜 하필 노동조합인가?

A. 대학원생 개인은 무력하다. 대학원 내 부조리를 폭로하거나 견디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의 폭로가 성공해서 교수가 징계를 받으면 연구실 자체가 사라지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뒤따른다. 배신자라는 낙인도 견뎌야한다. 대학원생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할 전국 단위 연합체가 필요했다. 또 노동조합이 되면 법률로부터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에게 노동조합만큼 유의미한 조직도 없다고 판단했다.

 

Q. 대학원생의 눈으로 본 대학원의 구조가 궁금하다. 대학원은 어떤 곳인가.

A. 한 마디로 지금의 대학원은 봉건제다. 대학이 왕이고 교수가 영주다. 영주는 자기 소유의 영토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대학원이 봉건제화된 이유는 대학 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학의 한 해 총예산 중 상당 부분은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함으로써 충당된다. 실제로 고려대의 경우 한해 총예산이 1조 원 정도 되는데 이 중 프로젝트 수주비용이 4천억 원가량 차지한다.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된 요즘, 대학의 돈줄은 프로젝트 수주비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이 봉건제를 선택한 이유다. 대학은 교수를 영주로 삼고 모든 권한을 부여했다. 조교가 받는 인건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연구원의 수까지 모두 교수가 정한다. 대학에게는 효율적인 시스템일지 모르지만 대학원생에게는 아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학원생의 노동력이 착취당하고 있다.

 

Q. 그렇다면 현 대학원의 구조에서 대학원생이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

A. 인건비 문제가 가장 크다. 현재 대학원생은 근로장학생 신분으로 근무하게 된다. 장학생은 노동의 대가를 장학금으로 받을 수밖에 없고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는다. 때문에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측정한 장학금을 받아야만 했고 장학금 액수나 노동의 강도에 대해 어떠한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평가 지표를 부풀리기 위한 대학 측의 계산된 행동이다. 대학원생의 노동에 대한 보수를 장학금으로 지급하니까 장학금 지급률이 높게 산출될 수밖에 없다. 대학원생의 노동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Q. 그 외의 또 다른 문제는 없나?

A.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고용하려는 연구원 수, 인건비 금액 등을 밝혀야 한다. 프로젝트라는 게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실패할 때를 대비해 대학원생 조교의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뺏는데 이걸 소위 ‘풀링’이라 부른다. 풀링으로 인한 폐해가 상당하다.
우선 대학원생의 급여를 조작하거나 착복하기가 쉽다. 대학원생은 보통 ‘참여 연구원’ 신분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할당된 참여율만큼 임금을 받는다. 참여율이 50%이면 임금을 절반만 받고 100%이면 최대로 받는 구조다. 이때 대학원생의 참여율을 100%로 할당한 다음, 임금은 50%만큼 주는 식으로 조작한다. 아니면 인건비를 지급한 뒤 교수가 얼마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인건비로 12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으면 50만 원을 풀링시켜 연구실 재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월급날이 되면 ATM 앞에 줄을 서는 대학원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풀링이 공공연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교수에게 프로젝트에 관한 모든 권한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영주를 거역하기란 쉽지 않다.

 

Q. 대학원생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대학의 움직임이 미진한 가운데 많은 수의 대학이 재정적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먼저 재정난을 호소하는 대학의 논리에 공감할 수 없다. 학령인구가 감소해서 재정이 악화됐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학령인구 감소는 역으로 대학이 사용할 비용의 감소를 의미한다. 대학 측에서 하는 주장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실제로 대학의 적립금 규모가 감소했어야 한다. 하지만 다수의 대학 적립금은 감소하지 않았다. 가뭄이 들어서 백성이 굶주리는데 곳간에는 쌀이 점점 늘어나는 형국이니 대학의 말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 학생과 교원에 대한 투자를 아낀 돈으로 건물을 쌓거나 부동산에 투기한다. 오늘날의 대학은 최대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이 돼버렸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10조 원을 넘긴 천문학적인 적립금을 두고 대학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하는데 설득력이 없다. 지금의 대학 구성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면서까지 미래를 위해 자본을 축적하는 모양새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준비한 미래가 무슨 소용인지 의구심이 든다.

 

Q. 앞서 말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A. 투쟁이 있어야 할 곳은 투쟁으로, 협상이 있어야 할 곳은 협상으로 해결하려 한다. 대학원생에 대한 처우는 전적으로 교수에게 달려있다. 이젠 교수가 아닌 대학이 이를 책임지고 관리해 학생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 봉건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현 대학원 시스템을 타파하고 대학의 중앙 관리력을 강화해야 한다. 학교와 학생 간의 고용 관계를 명확히 한 뒤 부조리를 통제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구축해야 한다.

 

Q. 향후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 

A. 현재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행정조교 부당 해고’ 문제로 투쟁 중이다. 학교는 학생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해고 통보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게 오늘날 대학원생의 현주소다. 행정조교를 비롯한 대학원생의 노동권 확립이 우선적인 목표다. 그 다음으로 올해 상반기에 대학원생 조교를 대상으로 전국 단위 실태조사를 준비 중이다. 인건비 조작·착복 문제부터 교수 갑질과 권력형 성범죄까지 꼼꼼히 파악할 예정이다.
장기적인 목표는 조합원 수의 증가다. 미국은 사립대학 대학원생의 노조활동이 허가된 뒤, 조합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대한민국 내 대학원생이 약 33만 명인만큼 조합원을 수만 명 수준으로 확대하려 한다.

 

 

 

글 정준기 기자 
joonchu@yonsei.ac.kr

사진 천건호 기자 
ghoo11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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