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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 이지은 보도부장
  • 승인 2018.03.17 23:21
  • 호수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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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보도부장
(불문·16)

인터넷은 여전히 미투(#Me Too) 이야기로 뜨겁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지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지만, 각계각층에서의 미투 외침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고, 이를 응원하는 위드유(#With You) 목소리 또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미투 운동의 도화선은 지난 2017년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파문이었다. 그가 권력을 이용해 이어온 30여 년간의 추악한 성범죄는 미투를 통해 세상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시작된 미투 운동은 한국의 민낯을 고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그 이후 오늘도 여전히 피해자들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은 권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남성이 권력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행했다. 비단 남성과 여성 간 권력 관계 뿐만은 아니다. 스승과 제자, 직장 상사와 부하 등 수많은 상-하 권력 관계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은 이와 같은 권력 관계에 있어 약자가 강자에게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Le premier devoir qu’il m ’impose est de remplacer par une vérité sévère une erreur séduisante.’ - Laclos

-매혹적인 오류를 엄격한 진실로 대체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과된 첫 번째 임무다.
 

권위자의 파렴치한 민낯에 대한 고발은 미투 운동이 아니었다면 드러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18세기 프랑스 작가 라끌로는 그의 작품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듣기 좋은 허위에 진실로 맞서는 것은 온당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현재 미투 운동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권위자가 사실은 추악한 범죄자에 불과했다는 엄격한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언젠가는 온당히 해야 할 일이었고, 이에 많은 피해자가 용기를 냈다. 그러나 처음 시작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의 반응은 매혹적인 오류로 회귀하고 있다.

“반복되는 성폭력에도 불구하고 왜 싫다고 강력하게 저항하지 않았느냐” “미투에 편승한 ‘꽃뱀’의 주장이 아니냐” “피해자의 욕망 때문에 벌어진 사건일 수도 있다” 등의 여론이 그 예다. 권력자의 민낯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권력자의 사회적 명성이라는 매혹된 오류로 진실을 가려버린다. 미투 운동에 대한 남성의 대처법으로 거론되는 ‘펜스룰’ 또한 그렇다. 펜스룰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자랑은 식사도 함께하지 않는다” “직장 내 술자리에서 여자는 배제하겠다”라며 여성을 사회에서 배제하고자 한다. 피해자에 대한 음모와 비난, 미투 운동에 대한 반작용들은 결국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밝혀져야 하는 진실을 가리는 오류일 뿐이다.

미투 운동의 핵심은 성별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다. 피해자를 향한 위와 같은 질타는 피해자들이 놓였던 권력 관계 상황을 간과한 것이다. 권력을 향한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은 음지에 침잠해있던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더 이상 성범죄를 음지의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Le mal est san remède quand les vices se sont changés en mœurs. - Laclos

-악이 관습으로 바뀌었을 때, 그것에는 약이 없다.
 

결국은 악이다. 관습이 되기 전 분명히 사라져야 할 악덕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미투 운동은 본래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나’ 하나가 소리 낸다고 달라질 것 없다던 만연한 생각을 바꿨기 때문이며, 이에 불편한 진실들이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는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수많은 ‘나(me)’의 소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마를 내딛었다. 우리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이유다.

이지은 보도부장  i_bodo_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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