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빈 사진영상부장 (언홍영·16)

 지켜야 할 10가지의 무언가. 십계명이다. 소시민처럼 그저 ‘오늘 뭐 먹지’가 하루 중 가장 큰 화두인 내가 쉬이 떠올리긴 마냥 어렵다. 최근 일고 있는 큰 움직임은 그 ‘지켜야 할 무언가’에 대해 울림을 줬다.

 #Me_too. 용기 있는 자들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을 용기없는 자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 그들의 고백은 용기가 필요했다.

 성폭력을 당한 그 자체도 고통이지만 본인의 피해 경험을 꺼내 이야기하는 것 또한 엄청난 상처가 된다고들 한다. 애써 봉합한 상처를 째고 다시 꺼내는 느낌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본다. 그런데 어렵게 꺼내 보여준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봐 어떻게 된 거라고?”, “그래서 누가 그랬다고?” 말하며. 그들의 아픈 기억을 하나의 가십으로 소비해버린다. 피해자들이 겪은 아픔을 가볍게 받아쳤을 때, 피해자의 상처는 다시 봉합되지 못한다. 더 깊은 상처로 팬다. 그 때문에 그들의 고백은 용기가 필요했다. 상처를 다시 헤집어 낼 용기.

 ‘나는 그들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들지 않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이 없는 말이다. 내 사고의 뿌리는 ‘전통적’ 한국사회에 기반을 둔다.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피해자들에 대해 온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 변화가 일기 전까지는 나 역시 잠정적 가해자였을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너도 그럴만한 행동을 했겠지”라는 눈짓을, 행동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미투 운동은 여러모로 반갑다. 미투 운동 그 자체도 분명히 한국 사회에 특기할 만하다. 또 다른 화두는 ‘2차 가해’에 있다. 미투는 나와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행해왔던 그것, 2차 가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 인식도 못 하는 새 2차 가해들은 우후죽순 발생했다. 2차 가해에 대한 개념조차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쉽게 2차, 3차 가해를 하는 사회에서 또 다른 피해자들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봉하고 칼로 도려내기도 했다. 마치 자신에게 발생하지 않았던 일처럼 보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어온 미투 바람은 돌을 던졌다. ‘너 지금 또 다른 가해를 하는 거야’.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2일 우리대학교 인권센터에서 보낸 메일은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이뤄지고 있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의 생각만으로 정확한 조사절차 없이 적정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대중에 대한 공개사과 요구는 가해자에 대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 문구를 보고 #Me_to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피해자 보호는 안중에도 없고 가해자를 보호해 달라는 이 문구는 이미 상처 입은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한 주간 미투 운동의 뜨거운 감자였던 배우 조민기 씨는 9일 낮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죄의 한 방법으로 택한 죽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스스로 피해자에게 그의 죽음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던가. 피해자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상처를 까뒤집으면서 그의 죄를 물었다. 하지만 그 죄는 상처만을 남겼다. 심지어 동정하는 여론도 있다. 그와 동시에 조 씨를 죽음으로 몰았다며 엄청난 용기로 고백을 한 피해자들을 책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켜야 할 10가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고 ‘만약 내가 피해자라면’의 역지사지만 가지면 된다. 그랬다면 가해자를 보호하자는 말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죽음도 택하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가 떳떳하게 사는 이 비정상적인 세상을 바꾸기 위해 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맞서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용기에 응답해야 할 때이다. #With_you 당신들에게 장미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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