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유산 스포츠 국가주의 청산해야

나하늘 (사학·17)

지난 2월 24일.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따냈다. 그 과정에서 돋보였던 것은 이승훈 선수와 정재원 선수의 팀플레이였다. 정재원 선수는 후미 그룹의 선두에서 바람을 맞아주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며 이승훈 선수를 도왔다. 뒤에서 체력을 보충하던 이승훈 선수는 막판 스퍼트를 끌어올려 1위로 경기를 마쳤고 초반에 무리한 정재원 선수는 8위를 기록했다. 경기의 승자는 이승훈 선수였지만 이승훈 선수는 정재원 선수의 팔을 번쩍 들어 올려 고마움을 표시했고 언론은 이를 두고 국가대표 선후배 간의 훈훈한 팀플레이로 표현하며 찬사를 보냈다. 어찌 보면 그저 훈훈한 미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 경기는 직후 많은 논란을 남겼다. 엄연히 개인전 종목인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 선수의 금메달을 위해 정재원 선수가 희생하는 것이 옳은지가 주된 화두였다.

일각에선 이러한 전략이 대한민국의 금메달을 늘리기 위해 선수 하나를 희생시킨 전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재원 선수는 이는 희생이 아닌 전략일 뿐이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팀 전략을 먼저 구사한 것은 타국 선수들이고 대한민국 선수의 승리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전략이었다고 이를 옹호하는 측도 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세계랭킹 1위인 이승훈 선수를 향한 타국 선수들의 견제와 전략을 이겨내기 위해선 필요악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를 떠나 특정 선수의 승리를 위해 같은 국가의 다른 선수가 희생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금메달이 곧 대한민국의 승리라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해 반대한다.

대한민국은 군사독재 정부 이래 엘리트 체육으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형 스포츠 육성 전략을 펼쳐왔다. 권위주의 정부는 스포츠를 통하여 국민적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양하고 그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다. 이러한 전략으로 대한민국은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항상 뛰어난 성적을 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선수가 밀어주기의 희생양이 되거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역사는 개인을 국가와 집단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렸고 개인의 고통을 국가의 영광이란 이름 아래 묻어버렸다.

이는 스포츠가 추구하는 정신에도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이다. 올림픽 헌장 1장 6조는 다음과 같다. “올림픽 게임은 개인과 팀의 대항전이며 국가 간의 대항전이 아니다.” 올림픽 헌장에서 올림픽이 국가 간의 대항전임을 인정하지 않고 IOC가 공식적인 메달 집계를 하지 않는 것은 인류가 국경과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선수들의 노력과 건전한 경쟁 정신을 스포츠를 통해 발휘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가주의적 스포츠 정책은 이러한 올림픽 정신에 명백히 어긋난다.

물론 애국심과 국가주의가 선수들에게 자극이 되고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또 올림픽 등의 스포츠 행사는 국가적으로 화합하고 결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정도일 때의 이야기일 뿐 애국심과 국가주의가 스포츠정신과 인류애를 뛰어넘을 때 그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될 수 없다. 국가의 명예를 위해 금메달의 희생양을 만들고 금메달이 아니란 이유로 사죄를 하고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플레이를 하는 상황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지 않은가. 또 스포츠를 통한 국가적 결집 또한 그 열기가 지나치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 변질되기도 한다. 국가, 민족 간의 반목은 결코 스포츠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이러한 행동들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번 대회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결승전에서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선수가 보여준 뜨거운 경쟁과 우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국민 또한 민족 감정과 메달 색은 잠시 잊고 두 선수의 우정과 스포츠정신에 찬사를 보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앙숙’ 국가의 선수가 스포츠로 하나 되는 장면, 이것이 올림픽과 스포츠의 존재 의의 아닐까?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이 대한민국의 명예보다는 선수 한명 한명의 노력에 더욱 주목하는, 국가주의 탈색의 기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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