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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스포츠 국가주의 문제인가스포츠도 국가를 위해 기능할 수 있다
  • 박준상(언홍영·16)
  • 승인 2018.03.10 21:19
  • 호수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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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상
(언홍영·16)

스포츠 국가주의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은 파시즘에 찬성하느냐는 질문보다 훨씬 답하기 어렵다. 국가주의를 넓게 해석하면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상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구성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상으로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 대립양상의 촉구와 국가 간 친선 유도는 올림픽이라는 검의 양날에 해당하지만, 양쪽 모두 국가주의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올림픽은 어느 정도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올림픽은 과연 세계인의 개인적 활동의 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렇게 탈바꿈시켜야 하는 것인가?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관람하러 가는 사람보다 봉사하러 가는 사람이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이 실패할 것을 예상했으나 누적 관객의 숫자와 조직위가 주장한 ‘흑자 올림픽’이 이번 대회의 성공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수호랑과 개회식 드론을 제쳐두고 남북 단일팀 구성과 평화올림픽을 이번 올림픽 성공의 최대 공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의 ‘잡음’ 즉, 우리 측 선수들의 출전권 양보로 부정적인 감정이 있던 필자도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선수들의 모습이나 점수를 내고 얼싸안는 하키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남북 평화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다. 국가주의의 승리였다. 또한, 한일 간의 여자 컬링 준결승전을 본 사람이라면 연고전은 비할 바가 안 되는 긴장감과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정서 덕분이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올림픽 헌장은 모든 경기가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라 개인이나 팀의 경쟁이라고 천명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모두가 알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은 금메달을 딴 선수보다 그 선수의 가슴팍에 새겨진 국기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대한민국이 거머쥔’ 금메달은 뒷맛이 씁쓸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몇몇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박탈했지만 세계에 평화적 메시지를 전달했고, 여자 컬링 한일전은 선의의 경쟁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대일 정서를 건강한 긴장감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반면에,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대한민국이 선보인 페이스 메이킹 전략이 남긴 것은 선수 한 명이 희생해서 얻은 금메달뿐이었다. 그러나 정재원 선수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페이스 메이킹이 일방적인 희생이었다고 생각지 않으며 이승훈 선수의 메달을 축하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 매스스타트 종목의 특성상 개인전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가가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고 한다. 참고로 이승훈 선수는 팀 추월 종목에서 바람막이 역할을 해 일방적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을 약화시켰다. 그런데도 잡음이 나오는 것은 페이스 메이킹 전략에 빙상연맹의 고질적인 파벌문제가 얽힐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 무대보다 대중의 관심이 적은 경기에서는 선수에게 원치 않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강요될 여지가 크기도 하다. 이상의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고려했을 때, 이번 매스스타트 종목 전술 문제를 국가적 차원의 이익을 위해 한 선수를 희생시킨 스포츠 국가주의로 보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선수 개개인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합의를 통해 결정한 전술의 성공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선수가 원치 않음에도 페이스메이커를 강요한다거나, 파벌이 다른 선수에게 페이스메이커를 떠맡기는 적폐를 국가주의라는 핑계로 합리화하려는 폭력적인 구조가 존재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국가주의를 넓은 의미로 해석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이 국가와 무관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포츠 국가주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겉치레 식일지라도 잠깐의 남북평화를 볼 수 있었고, 대일 정서를 선의의 경쟁심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애초에 올림픽은 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민족정서나 국가주의가 완전히 배제된 국제경기는 그 의미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완전하게 개인적 경쟁의 장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과격한 스포츠 국가주의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할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자국민의 우수성을 표출하려는 발상이나 특정 체육인 파벌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국가 간 평화와 친선 또는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어야 할 것이다.

박준상(언홍영·16)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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