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요구 부응’ vs ‘기초학문 죽이기’… 출구는 있나

대학가에서는 학과 통폐합에 대한 논의가 수년간 지속돼왔다. 이해당사자 간의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몇몇 대학에선 학과 통폐합이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다. 저출산 심화로 학령인구 감소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학과 통폐합은 거스르기 힘든 흐름이 됐기 때문이다. 대학경쟁력을 향상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융합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에는 이견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대학과 학생 간 소통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소통 없는 대학가
학생들이 뿔났다

▶▶지난 2015년 건국대 재학생들이 학과 통폐합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현재 학과 통폐합 논의가 활발한 대학으론 서강대와 국민대가 있다. 서강대는 2018학년도부터 커뮤니케이션학부와 지식융합학부를 통합해 지식융합미디어학부를 신설한다. 그 아래 4개 전공이 설치되며 신입생은 오는 2019학년도부터 모집한다. 국민대는 산림환경시스템학과(아래 산림학과)와 임산생명공학과(아래 임산학과)를 통합하기로 했다. 학교 측은 바이오에 초점을 맞춰 두 학과를 통합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러한 학과 통폐합이 학과 교수나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각각의 총학생회(아래 총학)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는 등 학교의 독단적 결정에 반발했다. 이에 서강대 발전홍보팀 전은정 직원은 “작년부터 학부별 간담회, 두 학부 학생회 및 총학으로 구성한 TFT와 총장 및 보직자 간담회를 진행하며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며 “관련 소통은 앞으로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산림학과와 임산학과의 통합은 사실상 산림학과 폐지와 다름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설상가상으로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아무런 근거자료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대 전략기획팀 관계자 B씨는 “이미 끝난 논의이므로 학교 측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전했다. 

건국대는 지난 2015년 학생들의 반발에도 학과 통폐합을 진행했다. 공예학과와 텍스타일디자인학과가 리빙디자인학과로 통합됐다. 이후 해당 사업은 크게 두 가지 지적을 받고 있다. 얕아진 수업의 깊이와 졸업조건의 변화다. 공예학과 13학번 A씨는 “공예와 텍스타일은 전혀 다른 소재를 쓰는데 같은 과로 묶어버리니 각 분야의 세부적 수업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덧붙여 A씨는 “졸업 요건 중 하나인 졸업전시가 1개에서 2개로 늘었다”며 “본래 소속이 아니었던 과의 전시도 해야 하는 만큼 전시의 질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대학 재정, 돈 되는 인재
“학과 통폐합은 필요하다”

 

반발은 날로 더해가지만 학과 통폐합에 대한 긍정적 입장도 적지 않다. 찬성자들은 ▲대학경쟁력 향상 ▲재정 문제 완화 ▲맞춤형 인재 양성을 근거로 든다.

이들은 학과 통폐합이 재정 사용을 효율화해 대학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 학과를 양성해 경쟁력 향상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경쟁력 향상은 곧 재정 문제 완화로 이어진다. 사립대학정책 전문가 이성은씨는 “대학이 국제경쟁력을 가지려면 특성화 분야가 있어야 한다”며 “신입생 충원율도 낮은 상황에서 비인기학과를 줄이는 게 대학 재정에 이롭다”고 말한다.
 
재정적 부분뿐만 아니라 산업 수요에 따른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해 통폐합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문적 학문 분야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대적 흐름에 적합한 인재 양성으로 교육적 측면에서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전씨는 “학교는 폭넓은 기초교육이 바탕이 된 창의융합형 인재로 학생을 성장시키고자 한다”며 “미래사회의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모이는 반대 목소리
“기초학문은 눈엣가시일 뿐인가”

 

그러나 학과 통폐합에 대한 비판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대학경쟁력 약화 ▲다양한 분야로의 접근 방해 ▲교육 환경의 불안정화가 그 이유다.

반대자들의 주된 목소리는 ‘기초학문 폐과 중심의 통폐합은 오히려 대학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데 모인다. 학과 통폐합의 대상은 주로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초학문 분야다. 취업률이 대학 재정지원 정책 대상 심사의 지표인 상황에서 기초학문 분야는 눈엣가시로 취급된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한성대 사회학과 김귀옥 교수는 “대학 재정지원 정책과의 연관성을 빼고 학과 통폐합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대학은 취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선 학과 통폐합 반대 학생들이 잇따라 반발하는 이유다. 

실례로 지난 2015년 건국대의 학과 통폐합 발표에 학생들은 노천극장에 모여 반대시위를 했다. 우리대학교 포함 타 대학 총학생회장들도 참석해 함께 목소리를 냈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건국대 15학번 한모씨는 “대학은 효율성과 취업률만을 바라보는 곳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 김 교수는 “장기적 전망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특정 학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키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전했다.

수요가 적은 학과들을 통폐합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직업으로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여대도 본래 계획에서는 각 학과의 실적을 중심으로 학과통폐합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적이나 신입생 지원율 등을 바탕으로 ‘비인기 학과’를 선별해 통폐합하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또 기초 학문의 폐지로 인해 교육 환경이 오히려 불안정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학과 통폐합이 진행될 시 그 학과의 교육환경은 전면 개편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맞춤형 인재라는 말 자체도 위험하다”며 “대학 교육은 폭넓은 지식과 방법론을 가르쳐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과 통폐합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대학가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재정 문제와 맞춤형 인재 양성을 앞세운 학교 측과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 간의 갈등은 오늘도 이어진다.

 

글 이찬주 기자
zzanjoo@yonsei.ac.kr

<자료사진 더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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