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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018 대학생이 묻자, 1987 대학생이 답했다'꼰대' 국회의원 우상호를 만나다
  • 안효근 기자, 박진아 기자, 박건 기자
  • 승인 2018.03.04 23:33
  • 호수 1805
  • 댓글 0

‘386 운동권’, ‘대변인만 8번’. 정치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처럼 비춰지기 쉬운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8번의 대변인 시절’을 거쳐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서 탄핵 정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정치인이 있다. 바로 1987년 당시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고 현재까지도 그 기억을 이어오는 우상호 의원(국문·81)이다. 우리신문사는 우 의원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인을 꿈꾸던 청년
학생운동 선봉에 서다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우 의원이 운동권에 속했던 것은 아니다. 우 의원은 “시인이 되고 싶어 국문과에 입학했고, ‘연세문학회’에서 활동하며 윤동주 문학상 등을 타기도 했다”며 “우리대학교 시인의 맥을 잇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수했던 문학청년의 생각은 군대에 가면서부터 바뀌었다. 우 의원은 “군대에서 대한민국의 너무 많은 부정부패를 보고 안타까웠다”며 “현실을 직시해 이 나라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문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우 의원은 펜을 내려놓고 깃발을 들었다. 학생운동의 선봉에 서게 된 우 의원은 운동권 학생이 중심이 됐던 학생운동을 대중운동으로 확장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학생회장이 됐다. 우 의원은 “학생회장이 되고 폭력적 시위도구였던 화염병과 각목부터 없앴다”며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 주장을 알리는 것이 시위에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전쟁터 같았던 시위 현장이었지만 학생들의 따뜻한 정이 오갔다. 우 의원은 간호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왔다는 특수마스크 일화를 소개했다. 우 의원은 “간호대 학생들이 기존의 마스크 두 개 사이에 치약을 바르고 생리대를 잘라 넣어 특수마스크를 만들어줬다”며 “너무 두꺼워 양 옆 틈으로 최루가스가 다 흘러들어왔지만 우리는 최루가스를 먹으면서도 간호대 학생들이 만들어 줬다는 이유 하나로 끝까지 쓰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기억을 오롯이 담은 영화 『1987』은 우 의원에게도 울림을 줬다. 우 의원은 영화의 흥행을 언급하며 “참 잘 만든 영화”라고 평가했다. 우 의원은 영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될 수 있음에 기쁨을 표했다. 우 의원은 “보면서 계속 눈물이 나고 마음이 답답해지는 영화인데도 700만 명이나 이 영화를 봤다는 것에 참 놀랐다”며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고귀한 이상과 가치가 전 세대에 공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깃발 든 청년, 여의도로

 

우 의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정치에 입문하지는 않았다. 우 의원은 “1987년은 6월 항쟁에 성공했지만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한 해였다”며 “이에 대한 책임으로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들과 향후 10년간 빛나는 자리에 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했다”고 밝혔다. 재야 시민단체에서 10년간 활동을 이어온 우 의원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했다. 

곧은 소신과 함께 시작한 정치 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괴리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 우 의원은 “여당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했고 대변인이라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개인적 소신과 반대되는 발표를 한 적이 많았다”며 “그런 날이면 밤마다 술을 마시며 대표에게 대변인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우 의원이 정치를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는 이한열 열사(경영·86)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우 의원은 이 열사를 떠올리며 “총학생회장이 제일 앞에서 쓰러져야했는데, 평범한 학생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며 “그가 나대신 죽었다는 마음의 무게를 안고 산다”고 말했다. 이 열사의 존재가 우 의원의 정치인생에서 여전히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 의원은 “이한열에 대한 기억은 나에 대한 경고의 의미”라며 “내가 나약해지거나 무기력해질 때 이한열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또한, 우 의원은 “비겁해지려 하거나 정치인들이 갖곤 하는 일종의 욕심들이 생길 때 한열이의 이름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곤 한다”고 의기를 다졌다. 

정치인으로서의 보람 또한 우 의원이 정치를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됐다. 우 의원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국민 다수가 나로 인해 혜택을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우 의원은 “연세대 뒷산인 안산 중턱에 누구나 이용 가능한 산책로를 만들었는데 매년 도심 속 숲길 만족도 전국 1위”라며 “지나가던 젊은 아주머니가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잘 만들었다’고 칭찬할 때 다가가서 나라고 말은 못해도 뿌듯하다”고 웃었다. 


1987년 대학생이 
2018년 대학생에게

 

지금의 기성세대도 과거에는 대학생이었다. 대학생 우상호는 정치인 우상호를 어떻게 평가할까. 우 의원은 “민주화운동 선봉에 있던 내가 지금의 나를 평가한다면 ‘꼰대’라고 할 것 같다”며 “그것밖에 못 하냐고 다그쳤을 것”이라고 답했다. 우 의원은 “당시의 정치인들을 무척 싫어한 20대의 나는 시원시원하게 주장하고 선두에 나서서 싸우는 정치인 우상호를 바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81학번 대학생 우상호 눈에 2018년의 대학생은 어떨까. 우 의원은 오늘날 대학생을 보면서 부러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고 설명했다. 우 의원은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당시 대학생들은 연애도 자신의 꿈도 포기하는 등 평범한 삶을 즐기지 못한 채 민주화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세대였다”며 “특히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 감옥에 끌려갔을 때 부모님이 오셔서 우는 모습을 보면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우 의원은 “그런 젊은 시절을 보냈던 우리에 비하면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지금의 젊은이들의 모습이 부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 의원은 오늘의 대학생들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우 의원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을 대학생답게 보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계속 스펙을 쌓고, 취직을 걱정하는 것을 자주 본다”며 “기성세대로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놓지 못했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장 격렬했던 시기의 대학생으로서, 그리고 우리대학교의 선배로서 우 의원은 오늘날의 대학생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남겼다. 우 의원은 최근 학내외 사안에 관심이 줄어든 대학생들에게 “젋은이들이 현실에 닥친 많은 어려움으로 고민하는 것을 알지만, 대학생들 스스로가 앞으로 미래의 주역임을 잊지 말아달라”며 “지난날 평범한 학생이었던 한열이가 다수를 위한 가치를 위해 희생했던 이유를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 의원은 “내가 학생회장 때 6월 항쟁이, 원내대표 때 탄핵이 이뤄졌다”며 “내가 무슨 장을 맡으면 나라가 바뀌는 것 같다”고 소박하게 웃었다. 시인을 꿈꾸던 청년은 ‘장’만 맡으면 나라를 바꾸는 인물이 됐다. 우 의원은 “이젠 주눅 들어 있는 젊은 계층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정책들을 펼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열이’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우 의원, ‘젊은 꼰대’의 마음으로 젊은이들과 함께하길 기대한다.

글 안효근 기자
 bodofessor@yonsei.ac.kr
박진아 기자 
bodonana119@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안효근 기자, 박진아 기자, 박건 기자  bodofesso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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