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윤 교수 (우리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1937년 5월 6일 목요일, 63빌딩과 견줄만한 크기의 독일의 대형 여객 비행선 ‘LZ 129 힌덴부르크(Hindenbrug)호’에 정전기로 인한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탑승 인원 총 96명 중 35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행을 위해 헬륨 대신 사용했던 수소가 폭발의 원인이었다. 수소는 가연성이 워낙 높아 정전기로 일어나는 작은 스파크 정도에도 불이 붙을 수 있으며 공기 중 농도 4% 이상만 되어도 쉽사리 폭발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요구로 한다.

수소는 이렇게 위험한 물질이지만 산업현장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우수한 환원제로써 매년 그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최근 들어 높은 에너지 전환 효율 및 청정성을 장점으로 수소연료전지와 이를 이용하는 수소자동차가 개발됨에 따라 이제는 가정환경에서도 수소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위험성이 높으면서도 유용한 수소를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수소가 누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수소가 주변 환경에 누출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수소는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감지할 수 없어 수소 누출을 검지할 수 있는 센서의 이용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전기화학식(Electrochemical), 촉매식(Catalytic), 음향식(Acoustic) 및 반도체 소자식(Semiconducting) 등 다양한 센서들이 개발됐고, 이들 대부분은 촉매 금속 물질이 수소에 의하여 열적, 전기적 성질이 변화하는 현상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서 가장 큰 모순점이 발생한다. 바로 센서에 인가되는 전기 혹은 열에너지가 오히려 수소 누출 상황에서 폭발의 위험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최근 이러한 기존 센서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수소에 의한 전기적인 특성 변화 대신 광학적 특성 변화를 감지하는 광학 방식의 수소 센서가 개발됐다. 특히, 부가적인 디스플레이 및 전원 장치 없이 맨눈으로 수소 누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육안 인식형(Eye-readable) 수소 센서가 큰 주목을 받았고, WO3, MoO3 및 Y 등과 같은 가스 변색(Gasochromic) 물질을 기반으로 육안 인식형 수소 센서가 제작됐다. 그러나 이러한 가스 변색 물질들은 수소와 반응 시간이 수분에서 수십 분까지 소요되는 등 응답속도가 매우 느리며, 상온에서 비가역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사용돼야 하는 실제 상용제품으로서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본 연구진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곤충 더듬이 표면의 감각기(Sensillum)를 모사하여 초고속 육안 인식형 수소 센서를 개발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곤충의 더듬이는 주변 환경을 민감하게 감지하는데, 곤충 더듬이 표면에 있는 비스듬하게 정렬된 섬유 형태의 감각기들이 자극에 대한 반응성 및 넓은 표면적을 제공하여 고민감도 센서로서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폴리머와 수소 촉매 금속인 팔라듐을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수소에 반응하는 감각기를 만들었고, 이 감각기들이 수소에 반응할 때 발생하는 투과도 변화를 이용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 초고속으로 반응하는 육안 식별형 수소 센서를 구현했다.

더듬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수소 센서는 기존의 육안 식별형 수소 센서가 가스변색물질과 수소 사이의 화학반응을 기반으로 동작하여 특유의 비가역적 특성을 나타냈던 것에 반하여, 수소 반응성 및 가역적 특성이 우수한 팔라듐과 탄성력이 우수한 폴리머가 결합된 나노 섬유의 형태 변화를 기반으로 하므로 빠른 반응 시간 및 반복적 사용에도 우수한 수소 감지 특성을 나타낸다. 만약 기존의 방식에만 입각하여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육안 식별형 수소 센서의 개발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기존 기술의 한계에 맞닥뜨렸을 때, 또 새로운 방향을 찾아보고자 할 때, 자연은 훌륭한 답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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