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침은 유명무실… 매뉴얼 없는 대학이 태반

지난 2017년 우리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텀블러 사제폭탄 폭발 사건(아래 텀블러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대학도 더 이상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 그 속에서 대학은 안전하게 보호받지만은 못하고 있다.

▶▶교육부의 「학교현장 재난유형별 교육훈련」 매뉴얼

 

사건 현장 바로 옆에서 시험을?
부재한 매뉴얼에 미흡한 사건 대응 잇따라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제2조의 정의*에 따르면 텀블러 폭발 사건은 테러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몇몇 언론사는 이를 테러라고 표현했다. 한국테러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호원대 법경찰학부 이만종 교수 역시 테러를 “폭력보다는 크고 전쟁보다는 작은 개념”이라고 정의하며 “이 정의에 의하면 텀블러 폭발 사건도 일종의 테러”라고 전했다. 이처럼 테러는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다. 범주도 포괄적이다 보니 이에 대한 정교하고 체계적인 대응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텀블러 폭발 사건 발생 당시, 우리대학교는 학교 자체의 포괄적 안전 지침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다. 당시 사건 대응 과정을 기록한 ‘사제폭탄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본부는 화재 알람 신호를 듣고 출동해 119에 신고하고 경찰의 지시를 따랐다. 우리대학교 총무처 박상욱 총무팀장은 “이전 안전사고들보다는 큰 사건이었지만 원래 있던 안전 지침에 따라 빠르게 처리해 추가 피해는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건 대응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학교는 폭발물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험을 감행했다. 추가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아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으나 얼마든지 훨씬 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박 총무팀장은 “경찰이 도착해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는 순간 학교는 사건에서 물러나게 된다”며 “사건 당시 시험을 중단하지 않은 것도 경찰 측에서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학교에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테러와 여타 안전사고의 구분이 쉽지 않다 보니 기존의 안전사고와 유사한 대응을 보인 것이다.

 

미흡한 정부 매뉴얼에
진퇴양난에 빠진 대학들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위해서는 테러에 대비한 구체적 매뉴얼 구비가 필수적이다. 교육부 비상안전담당관실 김호중 담당관은 “테러 양상이 다양한 만큼 개별 테러 상황에 알맞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 교수 역시 “각 대학의 환경이 다르므로 대학이 각자 테러를 정의해 자체적으로 지침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대학들에는 애초에 테러 관련 매뉴얼이 없는 실정이다. A대학 총무팀 관계자는 “테러와 관련해서는 아직 자체적인 매뉴얼이 없다”며 “만약 테러가 발생할 경우 정부의 매뉴얼을 일부 수정해 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박 총무팀장도 테러만을 위한 매뉴얼의 필요성에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공통적 의견은 테러 발생 시 정부의 테러 매뉴얼을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테러 대응 매뉴얼 역시 대학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교육부가 내놓은 테러 대응 매뉴얼에는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내용만이 포함돼있다. ‘학생들을 복도로 집결시켜’, ‘출석부로 인원을 파악’ 등의 지침이 그 예시다. 텀블러 폭발 사건 이후 우리대학교에서 마련한 ‘연세대학교 대테러 대응 업무 지침’ 작성 과정에서도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박 총무팀장은 “교육부 매뉴얼을 참고하려고 했으나 거의 참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현재 교육부 매뉴얼은 대학의 경우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

 

대학이 따라야할 정부 매뉴얼이 대학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문제도 있지만, 매뉴얼을 신설할 계획이 없는 대학들도 부지기수다. 김 담당관과 행정안전부 사회재난대응과 김종갑 사무관은 “학내에 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한 기관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관이 협의해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는 각 대학이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 있다는 가정 하에 실효성 있는 방안이다. 대학별 테러 대응 매뉴얼이 없고 정부 매뉴얼도 대학의 상황과 괴리된 현 상황에서 여러 기관이 함께 협의하려면 상황이 발생한 후에야 대응 방식을 정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대처를 위한 시간은 지체된다. 이 교수는 “학내 테러의 경우 학교에 세부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대학들은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 차원의 안전 지침에 대한 공지와 매뉴얼의 구체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화여대 김희정(간호·17)씨는 “연세대에서 폭발물 테러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알고 있지만, 정부에 테러 대응 매뉴얼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김 담당관은 “매뉴얼의 존재조차 몰랐던 것은 재학생들에게 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텀블러 폭발 사건 당시 시험에 응시 중이었던 임모씨는 “당시엔 별다른 피해 없이 넘어갔지만 정부의 매뉴얼이 미흡한 상황이라면 후에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안심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정부와 학교의 매뉴얼 구체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테러의 정의가 현장과 동떨어졌다는 점과 정부·대학의 매뉴얼이 모두 미흡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대응이 늦어지는 경각마다 인명은 더 오래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대학과 정부가 나서 테러 예방·대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 정부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하는 행위’

 

 

글 이찬주 기자
zzanjo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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