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구조에선 대학 판정패 공공 학술정보가 대안될까

새해 첫날부터 대학 교수들과 학생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리대학교를 포함해 약 70여 개 대학에서 학술정보 서비스 제공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학술정보 서비스 계약 갱신이 문제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아래 대교협) 컨소시엄은 학술정보 서비스 공급업체(아래 공급업체)가 제시한 구독료 인상을 거부하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학술정보 계약을 둘러싼 대학과 공급업체 간의 알력 다툼은 매년 반복된다. 학술정보 계약 갈등을 조명한다.
 

인상은 마음껏!
근거는 요령껏?

 

지난 1월 대교협 컨소시엄이 보이콧한 업체는 ▲DBpia ▲Kiss ▲사이언스다이렉트(ScienceDirect) 등 3곳이다. 이 중 현재 대교협 컨소시엄과 협상을 체결한 업체는 사이언스다이렉트뿐이다. 대교협 컨소시엄은 DBpia와 Kiss가 재협상 의지가 전혀 없다고 판단, 불공정 행위 여부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학술정보 서비스 계약에서 공급업체는 갑(甲)이다. 협상력이 대학에 비해 월등하다. 우선 현재 공급업체를 대체할 업체가 마땅치 않다. 대교협 컨소시엄이 보이콧한 업체 3곳은 학술정보 서비스 이용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여기에 ‘와일리(Wiley)’, ‘스프링어(Springer)’ 등을 포함하면 상위 5개 업체가 학술정보 이용량의 절대다수를 담당하는 실정이다.

공급업체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구독료 인상 요구에 거침없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1월 사이언스다이렉트를 운영하는 ‘엘스비어(Elsevier)’가 전년 대비 4.5% 인상된 계약금을 제시했다. 지난 5년간 사이언스다이렉트가 요구한 인상률은 연평균 7%이다. DBpia를 운영하는 ‘누리미디어’는 9.6%, 한국학술정보원(Kiss)은 7% 인상을 요구했다. 이외에 와일리, 스프링어도 평균 7% 상향된 계약금을 내세웠다. 

공급업체들이 인상한 구독료에 따르면 각 대학은 최대 1억 원까지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공급업체와 협상을 담당하는 대교협 컨소시엄 관계자는 “학술정보 서비스 시장이 독과점 구조라서 어쩔 수 없다”며 “최근 물가 상승률과 등록금 수준에 비춰볼 때 현 구독료는 과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공급업체 측은 구독료 인상이 적정 수준임을 강조했다. 구독료 인상은 ▲국가 R&D 재정 확대 ▲서비스 질 향상 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엘스비어 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의 경제적 상황과 연구개발 대비 투자 비율을 근거로 인상률을 결정한다”라며 “제공되는 학술정보의 품질 향상도 인상 요인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급업체 측의 설명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대학 등록금도 물가 상승률에 맞춰 인상 폭이 정해지듯이 학술정보 구독료도 인상률에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공급업체가 내놓은 인상률 산정 근거는 대체로 빈약하다는 게 관계자의 증언이다. 심지어 인상률 산정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업체도 있었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전자정보사업단 관계자 A씨는 “공급업체가 제시한 인상률 산정 기준과 과정이 대부분 비공개였다”고 전했다. 대교협 컨소시엄 관계자는 “인상률 산정 근거를 공개한 업체가 있었으나 그마저도 구체적이지 않았다”라며 “이런 현상은 특히 해외 공급업체에서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한편 ▲DBpia ▲Kiss 등의 국내 공급업체들은 그동안 해외 공급업체에 비해 구독료 인상률이 낮다는 이유로 구독료 인상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교육부 대학재정과를 통해 취재한 결과 공급업체의 구독료 인상률은 국내외 관계없이 비슷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교육부 대학재정과 김건섭 담당관은 “학술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규모나 영향력 측면에서 해외 공급업체가 우세한 건 맞지만 꼭 해외업체가 더 많이 인상하는 건 아니다”면서 “따지고 보면 국내외를 불문하고 전부 구독료를 높게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돈, 협상 방식, 연구 공백
대학의 ‘삼중고’

 

학술정보 서비스 계약에서 대학은 을(乙)이다. 대학의 협상력 약화는 크게 ▲대학 재정난 ▲계약 협상 방식 ▲교수 및 학생의 연구 공백 등에서 기인한다.

먼저 대학은 공급업체가 요구하는 금액이 부담이다. 등록금이 몇 년째 동결되고 학내 복지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도서관 자료구입비 증액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국내 대학교는 학술정보 구독료로 총 1천563억 원을 지출했다. 2008년에는 565억 원을 지불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22%씩 증가한 셈이다. 우리대학교의 2008년 학술정보 구독료는 약 1천700만 원이었지만 2016년에는 약 6천700만 원으로 약 4배 늘었다. 등록금 인상률,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정상적인 인상률이라 보기는 어렵다. 돈 나갈 곳은 줄고 쓸 곳만 늘어난 상황이다. 대교협 컨소시엄 관계자는 “이렇게 가격이 상승하면 수년 내 현재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현 협상 방식도 대학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기존 방식은 국가 주도의 협상이었다. 당시 대학들은 협상 결과에 불만을 가졌다. 대학이 원하는 학술정보 종류를 구독하지 못한 탓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협상권을 대교협 중심의 민간 컨소시엄으로 이양시켰다. 하지만 오히려 협상력은 약화됐다. 협상 과정에서 시간·비용도 많이 소모됐다. 대교협 컨소시엄 관계자는 “학술정보 서비스 협상은 원래 국가가 맡았는데 민간으로 이양하는 차원에서 대교협 중심의 컨소시엄 방식이 됐다”며 “이전에도 국가에서 담당했던 만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전했다.

한편 대학 내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 공백도 협상력 약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비스를 일정 기간 이용 못하면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학술 활동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당장 항의가 빗발치니 대학으로서는 버틸 도리가 없다. 우리대학교 학술정보원 관계자는 “실제로 DBpia 서비스가 중단된 후 학내 연구자들의 문의가 이어졌다”며 “중단 기간이 길지 않아 격렬한 항의는 없었지만 확실히 서비스 중단은 연구자들에게 민감한 문제”라고 밝혔다. 대학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공급업체가 제시한 인상액을 받아들이는 이유다.
 

대안은 공공 학술정보 서비스? 
 

이제 대학과 전문가들은 매년 발생하는 ‘곪은 종기’를 터트려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민간이 전적으로 맡고 있는 학술정보 서비스 시장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에서도 학술정보 서비스가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공 학술정보 서비스 구축에 뛰어들었다. 우선 대학 재정의 큰 부담으로 여겨졌던 학술정보 계약금 부담 완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산업과 백정기 담당관은 “대학도서관에 제공될 학술정보 28개 패키지 약 8천 종을 일괄 구매할 예정“이라며 “공공 학술정보 서비스 구축에 힘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학술정보 서비스 계약에서 직접 협상자로 나선 모습이다.

대학은 정부의 입장을 반기는 한편 보다 적극적으로 공공 학술정보 서비스를 구축해주길 바라는 모양새다. 현재 정부가 조성하려는 공공 학술정보 서비스가 규모와 종류 면에서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대교협 컨소시엄 관계자는 “일선 대학에서 필요한 학술정보가 무엇인지 정부가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A씨 또한 “정부의 태도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아직 부족하다”면서 “협상에 투입되는 재정 규모와 구독 패키지 수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김 담당관은 “올해도 대학이 희망하는 학술정보 패키지와 서비스 이용에 대한 수요를 전수조사할 예정”이라며 “패키지 구매를 위해 기획재정부에 재정적 지원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는 등 공공 학술정보 서비스 확충을 위해 더 노력해나가겠다”고 전했다.

 


 

 

글 정준기 기자
joonchu@yonsei.ac.kr

사진 박건 기자
petit_gunn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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